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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신문에 서울의대 초빙교수로 온 의사 출신 노벨 화학상 수상자 이스라엘의 Aaron Ciechanover 교수와의 대담이 실린 적이 있었다. 예전 학회에서 그분 강의를 들은 적도 있어서 읽어 본 바, 그분 생각으로는 한국에서는 의사 또는 임상의가 의학 연구 및 발전에 기여한 바가 적은 것 같다고 지적하고 있었다. 한국이 여러 부문에서 선진국 문턱에 와 있고 의대에는 우수 인력이 집중되고 있는데 왜 아직 한국의 의학은 이러한 지적을 면하지 못하고 있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나라도 선배 의학자들의 노고로 의학에 커다란 발전을 이루어, 임상의학은 세계 수준에 올랐고 의학 연구에 있어서도 예전에 비해 장족의 발전을 이룩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의학 발전의 근간을 이루고 의학의 역사를 창조하는 의과학 연구 면에서 보면 의학 선진국인 미국, 일본, 유럽 각국과 비
교하여 아직도 초보 단계에 있다고 하겠다. 우리나라 내부적으로만 보더라도 의과대학이 아닌 다른 대학에서 의과학의 중요한 discovery를 이루어내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 여기에는 일천한 우리나라 의학의 역사, 그간의 경제적 어려움, 의학 선진국과 비교할 수 없는 좁은 저변 등의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다.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정부에서 의학을 보는 시각 그리고 우리나라 의사, 의학자들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각에 관한 점이라고 하겠다.

이 문제를 부연하면 정부 혹은 일반 국민들은 의사 인력을 중요한 의학 연구 인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왔고, 더 나아가면 우리나라에서 (의사에 의한) 의학 연구가 과연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왔다고 하겠다. 오래전 얘기이지만 필자가 공부를 시작할 때 모든 과학 분야에서 외국에서 공부할 수 있는 국비 장학생 제도가 있었고 각종 병역 혜택이 있었지만 의대 졸업생, 의사들한테만은 그러한 것이 해당되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 예전에 그러한 공부의 기회가 없었던 의사 인력의 연구 능력이 타 과학 분야에 비하여 뒤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하겠다. 병역 문제도 심각한 문제였는데 미국의 경우 월남전 기간 동안 의사들은 NIH에서 연구를 함으로써 병역을 대신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그 결과로서 1964년부터 1972년간에 미국 NIH에서 근무한 사람들 중 노벨상을 받은 9명 전원이 M.D. 였으며, 그 중 8명이 clinician 출신이었다고 2013년 Michael Brown이 Science 지에 기고한 바 있다. 이러한 것을 보면 우리나라 정책 담당자들은 의학 발전에서 의과대학, 의사의 역할 또는 의학 발전 자체를 생각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예전에 필자가 공부를 시작할 때를 회상해 보면 우리나라에서 의사자신들 역시 의사 인력 또는 의과대학이 의학발전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잘 인식하지 못했다. 이러한 생각은 지금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크게 달라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와 같은 현상은 의과대학이 의학 연구의 중심이 되고 무수한 의과학의 breakthrough가 의대에서 나오는 미국, 일본의 경우와 크게 다르다고 하겠다.

그러면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우리나라의 의과학이 세계적 수준이 될 수 있을 지에 대해 고려해 보겠다.
첫째로 우리나라 의학 및 의과학의 발전이 의과대학에 달려있고 그것이 국민 건강과 복지의 증진 그리고 나아가서 인류에 기여로 이어진다는 것을 정부 및 의사들이 자각을 해야 하겠다. 당연한 말인 것 같은데도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문제이다. 우리나라에서 물리, 화학, 생물 4년제 학부 졸업생이 의과대학에 진학하면 과학계를 배신한 것처럼 생각하고 우리나라의 장래에 나쁜 영향을 줄 것처럼 신문 지상에서나 일반인 또는 정부 당국자들이 생각하는 것은 의학 선진국의 예를 보건대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시각을 빨리 바로 잡아야 하겠다.

둘째로 임상수련의들에게 full-time research의 기회를 충분히 제공해야 하겠다. 외국에서 의사로서 노벨상 수상자인 경우를 보더라도 의대 졸업하고 처음부터 투철한 목적 의식을 가지고 바로 연구에 투신하여 노벨상을 탈 정도의 큰 연구를 목표로 한 경우는 소수이고 다수는 임상을 하다가 어떠한 문제에 착안하였든지 또는 어떠한 계기로 연구에 흥미를 느끼고 연구를 하다 보니 노벨상을 탄 경우이다. 위의 Michael Brown은 내과 의사 출신이고 월남전 NIH 세대로 2012년 마지막으로 노벨상(화학)을 탄 Robert Lefkowitz 역시 내과 의사 출신이다. 2012년 노벨의학상을 수상한 Shinya Yamanaka가 정형외과 의사 출신인 것도 잘 알려져 있다. 미국 NIH director였던 유명한 Varmus 역시 내과 training 후 basic science에 관해 전혀 모르다가 우연한 기회로 NIH에서 연구를 시작하여 의학상의 중요한 발견을 하게 되었다. 임상의의 의과학의 관심 및 기여를 강조하는 것은 의학은 너무 광범위하고 다양하여 수많은 임상 각과 그 과 내부에서의 specific topic에서 예기치 못한 breakthrough가 얼마든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노벨상은 예기치 못한 분야에서 예측 불허의 새로운 paradigm을 만드는 경우에 주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기초뿐 아니라 수많은 임상 각과 그리고 과내의 다양한 주제에 관하여 각자 자기의 분야에서 심도 있는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고 지원하는 일이 중요하다 하겠다. 이점에서 의과대학을 기초, 임상으로 나누고 본격적인 연구는 기초에서만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의과학의 다양성, 복잡성을 고려할 때 미흡한 방향이라고 하겠다. 일본의 경우를 보면 Tokyo University, Osaka University, Kyoto University 등에서는 예들 들면 내분비대사학, 순환기학 등 임상의 각 분야의 한 교수 밑에 M.D. 대학원생, non-M.D. 대학원생이 반반씩 섞여 약 50명 이상이 전력을 다해 연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 교수 밑에 우수한 M.D. 대학원생이 수십 명씩 full-time 연구를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전체를 보아도 full-time research 경험을 갖게 되는 의대 졸업생 또는 임상의가 몇 명 안 될 것 이다. 얼마 전 어느 기사에서 물리학 분야의 연구자가 일본이 우리나라에 비하여 20배라는 것을 본적이 있는데 physician-scientist로서 3년 이상의 full-time research experience 경험을 한 사람의 수는 일본이 우리나라의 100배는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필자의 추측이다. 그 중 박사 과정에서 가장 우수한 연구 실적을 보인 대학원생이 조교수가 되고 그 중 또 가장 우수한 논문을 쓴 사람이 교수가 되어 다시 대학원생을 지도하게 되는 system이 구축되어 있고 이러한 우수한 system에서 나오는 논문은 내분비대사학, 순환기학의 범주를 넘어 의과학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학원생을 지도하는 일본 의대 교수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M.D. 대학원 학생들은 대단히 우수하여 약간의 motivation과 적절한 guide, 좋은 연구 환경만 있으면 비의대 졸업생 보다 좋은 연구 결과를 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2-3년의 full-time research experience가 필요하다고 얘기하고 있다. 2년 지나면 keep-up이 되어 대등한 입장에서 토론과 경쟁이 가능하고 3년이 지나면 non-M.D. 대학원생을 능가한다는 것이다. 예전과 달리 지금은 의대 출신 또는 임상의로서 full-time 대학원생을 위한 문호가 KAIST를 위시하여 몇 대학에 개설되어 있는 것은 큰 다행이다. 이를 더욱 많은 대학에서 확대하고 적극적으로 홍보, 활용하여 우수한 연구 결과를 보인 full-time research 경험을 갖는 physician을 각 대학의 기초, 임상 각 교실에서 교수 요원으로 채용하여 차세대 대학원생을 지도하는 선순환 구조와 system을 확립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하겠다. full-time 대학원생은 M.D. 또는 non-M.D. 기초 교수일 수도 있고 훌륭한 연구 background 및 실적을 갖는 임상 출신 교수일 수도 있겠다.

셋째로 위와 같은 M.D. 들에게 research training 및 독립적 연구를 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을 해주어야 한다. 의과대학의 경우 특히 임상 수련을 한 경우는 나이가 너무 많아져서 연구생활 또는 대학원 생활을 하기 곤란하게 될 가능성이 많다. 남학생의 경우 병역 문제가 있기 때문에 40세가 넘도록 공부만을 계속해야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월남전 당시의 미국에서와 같이 병역 문제를 연구에 종사함으로써 대체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또 미국 일본의 경우와 같이 임상 수련의 기간을 단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 일본의 경우는 인턴 포함 내과 수련의 기간이 3년이며 우리 경우의 5년은 너무 길고 physician-scientist 육성에 많은 문제를 초래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적절한 수당을 신설하여 나이가 찬 의대 졸업생들이 기본적 생활을 하는데 걱정을 하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residency 후 또는 박사 학위 취득 후의 clinical fellow 또는 research fellow들한테도 마찬가지로 충분한 research 기회와 career development award 등의 grant의 기회를 제공해야 하겠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우리나라에서 의과대학에는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지원하고 있어 이는 사회문제로 인식될 정도이며, 이러한 우수 인력을 잘 지도 육성하여 의학 발전에 기여하도록 하는 것은 의학계의 책무라고 할 수 있다. 의과대학 졸업생, 의사들은 대단히 우수한 인력이며 적절한 환경과 지도, 동기 부여만 있으면 세계적인 의학, 의과학의 breakthrough를 산출할 수 있다는 것을 정부 그리고 의학계는 이를 인식하고 올바른 정책 및 제도를 정비함으로써 우수한 잠재 연구 인력을 사장시켜 의학 선진국으로 가는 길을 저버리는 일이 없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이러한 노력을 게을리 하면 일본을 도저히 따라 잡을 수가 없는 것은 물론 지금 의과학 분야에서 일취월장하는 중국에 곧 추월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