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의학검사, 진단검사의학과에서 시행하는 검체검사 등 환자 진료에 사용되는 각종 검사 행위는 병원에서 시행되고 있는 명백한 의료행위임에도 불구하고 검체검사의 일종인 유전자/유전체검사가 비의료기관인 회사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의아한 분들도 있을 것 같다. 2005년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제정 당시 생명공학산업을 육성한다는 취지 하에 유전자검사를 시행하는 회사들에 대한 국가의 간섭을 줄이기 위하여 유전자검사기관 및 항목을 허가가 아닌 신고제로 운영하게 되었고, 비의료기관의 경우 대통령령이 정하는 20개의 금지 항목 이외에는 모든 유전자검사 항목이 허용되어 있다. 반면 의료기관은 건강보험요양급여 항목으로 지정되어 있는 290여종 - 대부분 각 유전자명이 별도의 검사 항목임-만을 시행할 수 있다. 현행 제도는 검체검사라는 의료행위를 비의료기관에 허용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검사 항목에 대해서는 오히려 역차별을 발생시키고 있다. 이러한 역차별은 이미 외국의 병원에서 시행하고 있는 임상적 가치가 인정되는 유전체검사라고 할지라도 국내 의료기관에서는 시행할 수 없으며, 상업적 목적으로 검사를 활용하는 비의료기관에서만 검사가 가능한 기형적 구조를 만들게 되었다. 왜냐하면 유전자검사 규율 방식의 차이가 비의료기관에서 시행하는 검사 항목에 대해서는 신의료기술평가를 통한 유효성 검증 과정 없이도 시행 가능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유효성 평가 이전에 이루어져야 하는 의료기기 허가 단계도 비의료기관에는 당연히 요구되지 않는다. 이 부분에 대하여 문제 제기를 하면 오히려 의료인은 반드시 다음과 같은 원칙적인 반박을 듣게 될 것이다. 그것은 생명윤리법에 의해 비의료기관은 의료기관의 의뢰를 받아서 유전자검사를 시행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비의료기관의 검사 행위는 의사의 처방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원래 정부는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 유전자검사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하여야 하며, 한편으로 유전자검사의 편익을 위해 관련된 보건의료와 산업을 지원하여야 하는 두 가지 책임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현 제도하에서는 비의료기관에서 시행되는 유전체검사에 대한 임상적 유효성 검증의 책임이 온전히 처방하는 의사에게 있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검사처방-결과해석-검사 전, 후 유전상담-추후관리"에 이르는 유전체검사 시행 및 활용의 주체는 바로 의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의료기관이 회사에서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불균형정보, 특히 검사의 제한점 등은 알 수 없는 홍보 자료 등에 의존하여 유효성에 대한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최근 국내 몇몇 제약사에서 유전체분석 업체와 공동으로 건강 검진용 유전체검사 서비스를 시작하였다. 검사 종목은 크게 단일유전질환검사, 약물유전검사, 영양유전체검사 그리고 질병감수성검사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국내 업체들은 이들 서비스로 150개에 이르는 질병에 대한 예측이 가능하다고 하고 있고, 가격은 상품에 따라 20만원~1500만원 정도로 제공하고 있다. 특히 가장 주력하고 있는 검사가 종양 발생 위험도를 예측해 주는 질병감수성검사이다. 대표적으로 유방암과 대장암 검사의 임상적 유효성에 대해 생각해 보자. 검사결과로 환자와 정상을 구분할 수 있는 검사 성능으로 통계값 AUC가 흔히 사용되는데 이 값이 0.5라면 동전 던지기를 해서 확률적으로 환자와 정상을 구분하는 정도의 성능에 해당하며 일반적으로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진단하는 목적으로 검사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0.99, 선별용 목적이면 적어도 0.75 정도의 값을 보이는 것을 적절하다고 판단한다. 2011년 발표된 메타분석 결과에 의하면 0.7-0.8 정도의 검사 성능이 되기 위해서는 그 동안 문헌에서 통계적 유의성을 보고한 최소한 141개의 유전자마커가 필요하다고 하였다. 물론 이들은 인종 특이적인 마커여야 한다. 대장암의 경우 2012년 한국인암예방연구의 위험도 분석에 의하면 40개 유전자마커를 가지고 분석한 위험도 예측 결과가 환자의 "연령"이나"가족력"만을 가지고 예측한 위험도에 비해 AUC값이 불과 0.5~5.2% 정도 밖에 증가하지 않았다는 결과를 보여 주고 있다. 그런데 국내 업체의 경우 이 두 종양에서 각각 1~4개의 유전자마커를 사용하고 있으며 이는 외국의 경우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종양과 같은 질병감수성검사 대상 질환은 수많은 유전자가 복잡하게 얽혀 질병 발생에 관여하며 여기에 환경인자까지 감안해야 한다. 예를 들어 유전적 소인이 80%나 차지한다고 하는 신장 (키)의 경우 지금까지 유의하다고 발표된 50개 이상의 유전자마커를 모두 합해도 개인의 신장 변이를 4∼6% 정도 밖에 설명할 수 없다고 보고되어 있다. 즉, 현행 질병감수성 유전체검사는 현실적으로 유용한 검사 성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검사의 위양성, 위음성에 따르는 추후 관리는 의사의 책임으로 돌아오게 된다. 국내에서 건진용 유전체검사의 도입을 고려하고 있는 의료기관의 경우 양성 결과를 보인 대상자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고 있을지 모르겠다. 유전체분석 서비스가 시작되면서 이미 병원 수익 창출과 관련한 과잉 검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들이 나오고 있다. 한편으로, 현행 유전체검사의 검사 성능으로는 상당한 위음성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의료진은 음성 결과를 받은 대상자에서 추후 발생될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외국의 경우에도 임상적 유효성에 대해서는 일치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2012년 11월 발표된 EASAC(European Academic of Science Advisory Counsil) 및 FEAM(Federation of European Academies of Medicine) 등 전문가 자문 위원회 지침에 따르면 현행 직접소비자판매 형태로 시행하고 있는 질병감수성검사는 임상적인 가치가 없으며, 오히려 유해할 수 있으므로 유럽 국민들에게 이러한 검사 서비스를 이용하지 말 것을 명시하고 있다. 특히 위 지침에서는 단일유전자질환검사, 산전진단, 영양유전체검사 및 약물유전검사는 직접소비자판매 형태로 이루어져서는 안되는 검사들로 기술하고 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질병감수성검사나 영양유전체검사는 임상적 유효성이 부족한 것이 문제가 되며, 임상적 유효성이 인정되고 있는 단일유전질환검사, 약물유전검사 등은 이미 보건복지부 고시에 의하여 명확한 사용목적, 사용대상 및 검사방법이 명시되어 있는 진료용 검사 영역이다. 현재 급여로 인정되어 있는 유전자검사 항목들은 관련 분야 전문의가 판독소견서를 작성, 비치한 경우에 한해 수가를 인정하고 있어 유전자검사에 대한 전문가 역할을 명확히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건진센터 뿐 아니라 유전자검사 관련하여 비전문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한방병원, 치과의원에 이르기까지 회사가 의뢰받는 의료기관의 범위가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유전성질환 및 약물유전검사는 다른 검사들에 비해 특히 분석, 결과해석, 유전상담 또는 약물 치료 방향 결정 등에 있어서 해당 분야 의료진의 높은 전문성을 요구하는 검사들로서 반드시 적절한 임상적 진료 환경 하에서 활용되어야 한다. 유전체분석 비용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추세이니 언젠가 담배 구매하듯 부담없는 가격에 검사가 가능한 시대가 온다면 현재 담뱃갑에 있는 폐암 경고 문구처럼 검사키트에 '본 검사 결과의 유효성은 보장할 수 없으며, 때로 유해할 수도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넣고 한 번쯤 흥미거리로 해봐도 큰 부담은 없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아무리 이런 시대가 온다고 해도 임상적 유효성이 부족한 검사를 의사가 처방하고 활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임상적 가치가 있는 새로운 유전체검사 기술이 의료에 적절히 활용되기 위해서는 현행 유전자검사 규율 방식에 새로운 변화가 있어야 하며, 유전자/유전체 검사라는 의료 행위에 대한 의료인의 전문가적 책임 의식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