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서울아산병원 호흡기 중환자실에는 주산기 산모 여섯 명이 폐 섬유화를 동반한 호흡부전으로 입원하고 있었다. 간질성 폐렴 및 특발성 호흡부전 증후군의 임상경과를 보이지만 감염질환의 치료제 및 면역억제제 등의 각종 치료에 반응하지 않고 폐 이식 이외 치료방법이 없다는 특성을 보였다. 폐 섬유화의 양상으로 진행되며, 고해상도 흉부 컴퓨터 단층촬영에서 간유리음영(ground-glass appearance)을 보인다는 점이 특징적이었다.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 교수진(최상호, 홍상범, 임채만, 고윤석 교수 등)에서는 원인 규명을 위한 역학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4월 25일 질병관리본부에 이를 보고하였다. 다음 날 질병관리본부와 아산병원 내부 조사팀 간 미팅이 개최되었고, 5월 6일 정식 역학조사를 실시하기로 결정하였다. 2011년 5월 12일부터 울산의대 서울아산병원 이무송 교수팀(이무송, 김화정, 정미란, 유용만)의 역학조사가 시작되었다. 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감염내과, 영상의학과, 병리과 연구진은 물론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관, 각 대학 역학 및 독성학 전공 교수진이 참여한 관학 협동의 다학제 연구로 진행되었다. 한편 질병관리본부에서는 5월 8일 정체불명의 바이러스성 폐렴 유행이 발생하였음을 언론에 발표하였고, 5월 10일에는 첫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5월 11일에는 소아에서도 유사한 형태의 질병이 발생하였다고 보도되었다. 같은 날 질병관리본부에서는 이러한 유행이 감염성 질환이 아니라 급성 간질성 폐렴일 가능성이 높다고 잠정적으로 발표하였다. 역학조사가 시작된 5월 12일 현재 9명의 환자가 확인되었으며, 폐 실질보다 세기관지가 주로 침범되는 소견이 관찰되어 흡입성 손상에 의한 폐 손상이 의심되었다. 한편 영상 소견상 유사한 양상을 보이는 과민성 폐장염(hypersensitive pneumonitis)의 경우 스테로이드나 면역억제제에 반응을 보이지 않아 배제되었다. 또한 바이러스 질환 등의 감염성 질환은 환자 검체 조사결과 배제되었다. 한편 2011년 5월 현재 서울아산병원에서 확인된 환자와 비슷한 숫자의 환자가 다른 병원에서도 확인되었다. 초기 역학조사에서 얻는 잠정적 결론은 전국적으로 새로운 질병이 출현하였으며,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원인(또는 위험요인)에 의한 것이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시급한 질병 정의와 원인 규명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객관적인 역학조사의 첫 단계는 해당 질병을 객관적으로 정의하여 그 규모를 확인하는 것이다. 연구진은 수차례에 걸친 회의 끝에 객관적으로 환자를 확인할 수 있는 판정기준을 수립하였으며, 이를 원인 미상 폐손상 증후군으로 명명하였다. 판정기준은 흉부 컴퓨터 단층촬영에서 간유리음영, 폐 섬유화 소견을 보이는, 급격히 진행되는 폐 기능부전을 보이는 성인이었다. 초기에는 주산기 여성으로 국한하였지만 성인 남성에서도 동일한 질환이 발생하였기 때문에 남성도 대상 환자로 포함하였다. 조사 당시 소아에서도 유사한 질환이 발생하였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조사의 시급성, 임상적 양상의 차이 등을 감안하여 성인에 국한하였다. 이상에서 결정된 판정기준에 따라 2011년 기준으로 최근 5년 동안, 즉 2006년 1월부터의 환자 규모를 파악하였다. 전국에서 발생한 환자를 파악하기로 계획하였지만 개인정보보호법 등의 현실적 제약 때문에 서울아산병원으로 제한하였다. 연구윤리 준칙에 따라 원내 임상연구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연구를 진행하였다. 환자 의무기록 및 영상기록을 토대로 대상 환자를 검색한 결과 2006년 이전에도 2명의 환자가 발견되어, 총 환자 수는 28명으로 확인되었다. 이들을 대상으로 호흡부전의 원인으로 알려진 다양한 위험요인에 대한 설문조사가 수행되었다. 28명 중 조사에 응하지 않거나 조사가 불가능한 대상자를 제외하고 총 18명에 대해 면접설문조사를 수행하였다. 의무기록 등으로 조사가 가능하였던 28명의 발생 시점은 대부분 1월부터 4월까지였으며, 1명을 제외하고 7월부터 11월까지 발생한 경우는 없었다. 또한 환자는 전국 각지에서 내원하였다. 간접적으로 확인한 결과 타 병원에서 확인된 환자 또한 비슷한 규모였다. 개인정보보호법 등 인권 보호를 위한 제반 규정 및 원인 때문에 초기 조사에서는 타 병원 환자를 조사하지 못하였다. 폐 손상 증후군 28명을 확인하고, 이들 중 18명에 대한 설문조사에 의해 의심되는 위험요인의 노출률을 파악하였다. 환자 모두가 가지고 있는 요인(예를 들어 한국에서 살고 있다는 요인)이라 하여 질병의 원인인 것은 아니므로, 일반 인구집단, 즉 대조군에서의 위험요인 노출률 또한 조사하여야 한다. 따라서 폐 손상 환자 1명당 동일 병원에 내원한 사람 4명 남짓 짝지어(연령, 성별, 내원 연도가 동일한 사람으로) 대조군으로 선정하였다. 대조군은 호흡기 내과, 알레르기내과에서 선정하였고, 환자 중 주산기 산모의 경우 정상 분만 후 퇴원하는 산모도 대조군으로 선정하였다. 아산병원 연구원은 물론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관도 참여하여 6월 한 달 동안 면접설문조사가 수행되었다. 환자군 18명과 대조군 121명의 설문조사를 마치고 자료 입력과 통계분석까지 쉼 없이 이루어졌다. 조사된 위험요인별로 대응위험도(오즈 비, odds ratio)를 계산하였다. 대응위험도는 질병의 위험요인을 평가하는 역학적 지표로서, 1을 초과하는 경우 위험요인, 1 미만인 경우 보호요인으로 간주한다. 다른 위험요인의 영향을 통계적으로 보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계산된 결과(단변수 분석이라 한다.)에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 가습기 사용, 거주 환경에서 곰팡이의 존재 등이 주요 위험요인으로 조사되었다. 대응위험도는 각각 47.3, 13.7, 4.4로 계산되었으며, 통계적으로 유의한 결과로 분석되었다. 다변량 분석결과 또한 유사하게 얻어졌다. 역학적 관점에서 47.3의 대응위험도는 해당 위험요인이 해당 질병의 원인일 가능성이 매우 높음을 의미한다. 가습기 및 곰팡이의 경우 가습기 살균제와 동반하여 관찰되는 위험요인으로서 자체적으로 원인으로 작용하였을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판단하였다. 따라서 연구진과 질병관리본부 측에서는 수차례의 논의를 거쳐 가습기 살균제의 장기간 흡입이 이번 유행의 원인일 가능성이 있다는 잠정적인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인과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생물학적 증거가 필요하다. 따라서 가습기에서 사용된 살균제의 성분 자료 및 전임상 자료를 확보하는 한편으로, 가습기에서 발생하는 살균제 입자 양상과 세기관지까지의 흡입 가능성에 대한 평가, 세포독성시험, 동물흡입 독성시험 등을 수행하였다. 인과적 관련성이 높은 것으로 생각되는 가습기 살균제를 확보하여 주요 성분 및 관리 실태를 파악하였다. 가습기 살균제는 이름 그대로 살균효과를 가진 유효성분을 가지고 있으며, 상당수는 구아니딘 계열이었다. 본 제품은 생활화학제품으로 살균 목적으로 사용하며, 호흡기 흡입을 전제로 하지 않기 때문에, 호흡기 독성에 대한 시판 전 자료가 없고, 의약외품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인체에 대한 독성 자료 또한 부재한 상태였다. 즉 인체에 대한, 특히 호흡기에 대한 안전성 평가가 부재한 상태로, 자유롭게 생산과 판매가 가능한 제품으로 취급되었다. 살균제 입자 생성시험이나 세포독성시험에서, 가습기 살균제 성분이 세기관지까지 직접 침투되고, 세포의 사멸을 초래한다는 결과가 얻어지면서, 정부에서는 8월 31일 원인미상의 폐질환이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정식으로 발표하였다. 이후 3개월 동안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한 추가적인 환자-대조군 연구를 수행하고, 가습기 살균제 사용량 및 기간 등과 폐 손상 관련성에 대한 양-반응 관계를 평가하였다. 또한 이후 진행된 소아 대상의 역학조사에서도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소아 폐손상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소견이 관찰되었다. 동물흡입독성 시험의 잠정적 결과가 11월 초에 얻어지면서, 11월 11일에는 유해성이 확인된 가습기 살균제의 강제 수거 명령, 의약외품 지정 등이 직접적 규제 조치가 발표되었다. 또한 피해자에 대한 공식조사를 위해 2012년 11월 11일자로 조사위원회가 구성되어 활동 중에 있으며,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에 대한 손해배상 재판 또한 진행 중이다. 가습기용 살균제가 처음 사용된 것은 1994년 이후로 생각된다. 1994년 11월 16일 매일경제신문에서 국내 회사가 가습기살균제를 개발했다는 기사를 보도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만 고유한 제품인 가습기 살균제는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개발사, 규제기관 및 사용자 모두 그 위해성을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사용되고 있었다. 2006년 이후 소아에서 원인 미상의 간질성 폐렴이 발생한 것으로 학계에 보고되었으며, 2011년에는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에서 주산기 산모의 폐 손상 사례가 집단으로 관찰되었다. 병원 의료진의 시의적절한 보고와 질병관리본부의 즉각적 개입에 의해 역학조사팀이 구성되었으며, 질병의 객관적 정의와 환자 확인, 질병 원인에 대한 환자-대조군 연구가 진행되었다. 또한 동물 흡입 독성시험을 비롯한 독성학 연구가 동시에 진행되었다. 조사 착수에서 3개월이 지난 후에는 가습기 살균제가 폐 손상의 원인일 가능성이 확인되었고, 규제 조치 또한 시작되었다. 2011년 5월 이후부터 현재까지 성인과 소아 모두 이러한 폐 손상 사례는 보고된 예는 없다. 역학조사를 포함한 정부 학계의 협력으로 원인 미상으로 지나갈 수도 있는 가습기 살균제 폐 손상의 원인을 규명한 점은 의미 있는 일로 생각된다. 그러나 제조사와 피해자 간의 재판, 정부와 시민단체, 학계로 구성된 폐 손상 조사위원회의 조사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2011년의 비극적 사례를 교훈 삼아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각종 유해제품에 대한 체계적 평가 관리 시스템이 구축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