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교육은 내가 학부교육을 받을 때 이미 우리나라 어떤 분야의 교육보다 앞선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 같다. 아직 잘 정비된 교육과정과 시간표 대로 이행되는 강의가 드물던 시대에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일년 동안 빠짐없이 진행되는 강의를 받으며 의과대학 교육의 질적 수준에 감탄했던 기억이 이미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도 머리 속에 새롭다. 그로부터 이십여 년이 흐른 지금 우리나라 의과대학 교육은 한층 더 발전하여 새로운 교육 기법과 강의 내용이 보다 잘 정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더 이상 발전하기 어려운 단계까지 의대 교육이 성장한 것 같은데도 여전히 조금이라도 더 나은 교육을 위해 애쓰는 교수님들을 보면 같은 동료로서 존경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적어도 의과대학 교육에 관한 한 내용의 부실로 지적 받는 교수님들은 우리나라에 거의 없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이렇게 순항하고 있는 의과대학 교육이지만, 잘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한다는 심정으로 부족한 말이나마 한가지만 보태보기로 한다면 역시 '잘 버리는 것의 미덕'을 한번쯤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의과대학 교육에 대한 학생 평가에서 항상 나오는 이야기를 돌아보면, 내용 자체가 부실하다는 지적은 거의 없고 반대로 양이 많다, 알아 듣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주류를 이룬다. 이러한 학생들의 불평을 강의를 받는 젊은 친구들의 당연한 불평으로 돌려버릴 수도 있겠지만 객관적으로 판단하더라도 단위 강의시간당 전달되는 정보의 양이 의과대학의 경우, 다른 단과대학에 비해 월등히 많은 것은 역시 사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사람의 질병을 치료하고 생명을 지켜야 하는 미래의 의사를 양성하는 입장에서 하나라도 더 정확한 지식을 전달하고자 하는 강의자의 노력은 평가 받아야 마땅하다. 다만 우리의 이러한 의욕과 효율적인 강의는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번쯤 하게 된다. 돌이켜 보면 매일 쏟아져 나온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의학정보 양으로 볼 때 관련 분야에서 실력과 권위를 자부하는 의대 교수님들이 '하나라도 더' 학생들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전달하고자 하는 의욕이 올바른 방향으로 발휘되지 못한다면 학생들은 도저히 소화 시킬 수 없는 양과 질의 강의를 수업시간에 접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우리 의대 교육자들은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을 강의에서 빼 낸다는 것에 대해 상당히 부담감을 느끼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적당한 양의 정보를 주어진 시간에 주지 못한다면 그 자체로 '과유불급'의 평범한 진리를 우리가 스스로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의학정보를 하나라도 더 학생시절에 접하는 것은 훌륭한 의사로 성장하기 위해 중요한 일일 수 있다. 설령 지금 이해 못하더라도 나중에라도 같은 내용을 접하게 되면 학생들이 해당 지식을 이해하는 출발점이 다를 것이라는 시각도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시각에 동의하더라도 우리는 그 지식의 전달이 꼭 강의시간에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지식의 홍수 형태로 제공되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꼭 한번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강의는 적당한 분량으로 조절하더라도 이에 다루지 못한 내용에 대해서는 학생들에게 과제나 다른 보완교재의 형태로 제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미래의 의사를 길러내는 의과대학에서 하나라도 더 정확한 지식을 학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노력은 고귀하다. 하지만 보다 효율적인 강의를 위해서 의대 교육자들은 이제 강의 내용을 보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날씬하게 만들려는 노력도 어느 정도는 생각해 봐야 할 시대에 이제는 도달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