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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학회 명예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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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안용팔 (1926 ~ 1990) 우리나라 재활의학을 개척하고, 대한재활의학회 창립을 주도한 의학자 (헌정일 : 2016-03-29)

공적사항

주암(周巖) 안용팔 교수는 1926년 3월 함경남도 원산에서 의사인 안남규의 9남 중 4남으로 태어났다. 원산 공립중학교를 졸업하고, 1945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하였다. 1949년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병원에서 교수 조무원으로 근무하던 중 1951년 공군 군의관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하였다. 군의관 시절 공군항공의학연구원 기획과장을 지내며, 주한미군 의료반에서 신경정신과 훈련을 받았다.

1955년 전역한 안용팔 교수는 새로운 의학에 대한 열정으로 40년 전 부친이 유학하였던 독일 뮌헨대학교 의과대학(제2 내과 물리의학연구소 연구생)으로 유학을 떠나 1957년 동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내과를 전공한 안용팔 교수는 물리의학에 관심이 많았으며, 박사학위 논문도 <모루추출물, 살리실산 등이 포함된 온수욕이 피부온도, 근육 내 온도, 체온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비교실험>이었다. 독일의 여러 병원 내과에 근무하던 안용팔 교수는 1959년 귀국하여 가톨릭의대 내과 조교수로 임용되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동 대학에서 1960년부터 의학과 4학년을 대상으로 ‘물리요법’ 강의를 시작하였고, 1960년 서울의대, 1963년 수도의대(현 고려의대)에서도 물리요법에 대한 강의를 하였다.

1971년 대한재활의학회 창립을 주도하였으며, 초대, 2대 대한재활의학회 부회장(1972-1976)과 3대 회장(1976-1978)을 역임하며 한국의 재활의학 발전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였다. 1978년에는 물리치료에만 국한되는 듯한 ‘물리의학’이라는 진료과명을 오늘날과 같은 종합적인 의미의 ‘재활의학’으로 변경하였다. 대외적으로도 미국 물리의학 및 재활의학회 회원(1967-1990), 일본 재활의학회 회원(1974-1990), 그리고 국제재활협회 학술분과 위원(1984-1990)으로서 국내외 학술교류를 통해 의학발전에 기여하였다. 또한 재활의학과 연관된 대한류마티스학회 평의원(1981-1990), 대한스포츠의학회 부회장(1988-1990), 국제의지보장구연맹 한국지부 회장(1988), 국제재활협회 아-태지역 의무전문 분과위원(1989)으로 활동하며 재활의학 분야의 확장에도 기여하였다.

안용팔 교수는 1980년 3월 가톨릭의대 재활의학교실을 창립하고 초대 주임교수로서 후학을 양성하는데 열정을 기울였으며, 재활의학에 관한 100여 편의 논문, 학위지도 논문, 종설과 10여 편의 저서, 재활의학 발전을 위한 250여 편의 기고문을 발표하였다. 특히 재활의학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시드니 리히트(Sidney Licht)의 "Physical Medicine Library" 제7권 에서 ‘Spa in Korea'를 집필하였으며, 뇌성마비의 조기진단과 치료 방법으로 각광받고 있는 보이타(Vaclav J. Vojta)의 <영아기의 뇌성 운동장애>의 번역은 동 분야에 해박한 지식과 독일어에 능통한 선생만이 할 수 있었던 작업이었다. 또한 한국 의료진들의 독일유학을 적극적으로 도우며, 보이타 박사를 비롯한 독일 의료진들을 한국에 초청하여 뇌성마비 환자의 진단과 치료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였다.

안용팔 교수는 가톨릭의대 성빈센트병원 의무원장(1967-1972)을 필두로 가톨릭중앙의료원 기획실장(1972-1976), 가톨릭중앙의료원 의무원장(1976-1982) 등을 맡아 가톨릭의대 강남성모병원을 설립하는 등 의료 경영자로서 오늘날의 가톨릭중앙의료원을 키우는데 일익을 담당하였다. 또한 독실한 가톨릭 교인으로서 한국가톨릭의사협회 부회장, 회장(1973-1989),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학술이사(1989-1990)로 활동하였다. 뿐만 아니라 의료 행정가, 재활의학의 개척자, 장애인의 사회 참여와 권익 증진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실시한 사회 활동가이기도 하다. 국제 키비탄클럽 한국지부 부총재(1984-1986), 총재(1987-1988) 및 한국뇌성마비복지회 이사(1984-1990), 보건사회부의 사회복지정책 장기발전위원회 위원(1989-1990), 성분도 장애인직업재활원 후원회 부회장(1989-1990) 등을 역임하며, 평생을 장애인이나 사회적 약자들의 복지 증진을 위하여 헌신하였다. 안용팔 교수는 1967년 독일연방공화국으로부터 서독과의 의학 및 문화교류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공로훈장을 포상 받았으며, 1984년 12월 장애인 권익향상에 대한 공로로 대통령 국민포장(교육)을 받았고, 1990년 독일연방공화국으로부터 공로메달을 수상하였다.

재활의학을 전공하는 제자들에게도 ‘재활의학을 전공하려면 먼저 장애인을 이해하고 그들을 도우려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던 선생은, 불치의 지병이 있음을 알고 나서도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이 1990년 10월 말 추계학술대회 좌장을 맡는 등 자신의 하던 일을 변함없이 계속하는 고매한 품성과 의연한 모습으로 마지막까지 초지일관하였다. 1990년 12월 정년퇴임을 1년 앞두고 64세를 일기로 별세하여 가톨릭의과대학장으로 영결식이 거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