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본문내용 바로가기

대한의학회 명예의 전당

  • HOME
  • 사업ㆍ활동
  • 대한의학회 명예의 전당
  • 명예로운 의학자
故 이용각 (1924 ~ 2016) 혈관외과학과 기관이식 분야를 개척하여 외과학 발전에 기여한 의학자 (헌정일 : 2015-03-24)

공적사항

이용각 교수는 경기도 수원의 명문 집안 출신으로 서울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1945년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였다. 초년 의사 생활은 드라마였다. 일본군 군의 소위로 임관한 직후 해방이 되어 소련군 포로생활을 한 다음 귀국하고, 서울의대 예방의학 조교와 이화의대 전임강사로 일하던 중 한국동란이 일어났다. 북한으로 강제 납북될 위기를 어렵게 피하고 미 해병대의 종군의사가 되어 장진호 전투에 참전하였다. 휴전이 될 때까지 동료 미군 군의관으로부터 전상자를 치료하는 새로운 의학을 배우면서 외과의사가 되기로 하였다. 1953년 도미하여 미국 텍사스 주 휴스톤 시의 베일러 대학병원 드베키 교수 밑에서 레지던트 생활을 하면서 외과 특히 혈관외과의 기본과 연구방법을 5년간 배우고 귀국하였다. 인턴 수련 중 미군 종군의사로 헌신한 것에 대하여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자유훈장을 수여받았다.

1958년 귀국 후 이화의대 외과학 조교수로서 동대문병원에 근무하였는데 미국에서 배운 최신 외과 수술법으로 환자를 진료하였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진료기법을 개발하였다. 특히 하지정맥류 절제술에 새로운 스트리퍼를 이용하였고 동맥 연속 촬영술을 창안하여 응용하였으며 대크론(Dacron) 인조혈관을 이용하여 복부대동맥류 수술을 1959년 국내 처음으로 시행하는 등 우리나라 외과 분야 환자 치료의 범위를 넓혔다.

1962년 가톨릭의대 외과 부교수로 부임한 다음 미국에서 터득한 수술법을 여러 분야에서 적용하였다. 새로운 방법으로 시행한 갑상선, 부갑상선 수술, 부신절제수술과 유방절제 수술 등은 과거의 수술결과와 비교하여 그 성적이 뛰어났다. 또한 대동맥과 말초혈관 수술을 광범위하게 시행하였으며, 하지의 원인불명 괴사증을 버거씨병이라고 추정하는 임상경험을 발표하였다. 이와 같은 업적으로 1964년 대한의학협회 학술대상을 수상하였다.

미국에서 배워온 외과학 술기를 적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개와 돼지를 이용하여 장기이식에 필요한 혈관외과학적 실험연구를 하여 1967년에는 장기이식을 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렀다. 1969년 마침내 국내에서는 물론 아시아에서 최초로 사람의 신장이식 수술을 시행하였다. 이용각 교수는 대한외과학회 이사장과 회장으로서 학회 발전에 봉사하였고 1969년에 대한이식학회, 1984년에 대한맥관외과학회 (현 대한혈관외과학회)의 창립에 주도적 역할을 하였으며, 1983년 대한구급의학회 (현 대한중환자의학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학문 발전과 환자 진료 향상에 공헌하였다.

교육자로서 이용각 교수는 젊은 외과학 교수가 도미유학을 하도록 독려하고 추진하는데 노력하였으며 미세혈관 수술법을 도입하는 교육을 하였다. 또 임상의학연구를 중요시하여 교내에 임상의학연구소를 설립하고 임상의사의 연구를 독려하여 많은 성과를 거뒀다. 의료행정 분야에서는 가톨릭의료원 성모병원장, 인하중앙의료원장, 한국심장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하면서 병원 행정 발전에 기여하였다. 이용각 교수는 의학과 의료 전반을 아우르는 단체에도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대한의사협회 부회장, 대한의학회 고시이사, 분쉬의학상 운영위원회 위원과 위원장으로 활동하여 우리나라 전문의 제도 정착과 학술 연구 발전에 기여하였다. 이러한 공적으로 이용각 교수는 1978년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