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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학회 명예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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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조규상 (1925 ~ 2013) 직업환경의학을 개척한 선구자이자 탁월한 교육.행정가 (헌정일 : 2014-04-08)

공적사항

혜산 조규상(慧山 曺圭常) 교수는 1950년부터 2000년까지 우리나라 경제 개발의 격동기에 있어 근로자의 건강보호를 위해 직업보건 분야를 개발한 선구자이며 현대 가톨릭 의료기관 발전에 헌신한 공로자이다.

조규상 교수는 1925년 서울의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교육자인 아버지 조원환과 신심깊은 어머니 박경숙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경성 사범 부속 재학 중 부친의 전근으로 봉천 제일 중학을 졸업하고 여순의학 전문학교 재학 중 8.15 해방을 맞아 귀국, 경성의학 전문학교에 편입 후 1948년 국립 서울대학 의과대학을 졸업하였다.

원래 학문을 좋아하였던 그는 임상의학을 지원하지 않고 기초의학인 위생학교실(주임교수 심상황)에 조교로 입국하여 환경위생학을 전공하였다.

한국 전쟁으로 부산으로 피난 중 그는 잠시 조선방직 공장에 나가 여공들의 노동실태를 조사하여 국제학회에 발표한 바 있다.

환도 후 교실에 복귀하여 전임강사로 학생교육에 전념하다가 공군에 소집되어 항공의학연구소에서 연구장교로 국군장병의 칼로리 소모량 기준을 발표하였다. 그는 항공의학의 특수환경(저기압, 저산소, 저온, 가속도)을 연구하던 중 석탄공사(의무실장 최영태)의 요청으로 탄광 갱내에서 일하는 광부들의 진폐증과 갱내 화약 발파 후 발생하는 가스 중독을 조사 보고하여 사회에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당시에는 아직 산재보상보험제도가 없는 시절이었다.

1958년 4년간 군복무를 마치고 신설된 가톨릭대학 의학부에 부임하여 예방의학교실을 창설하였다. 그는 곧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대학 부설 산업의학연구소(1962)을 창설하여 광산과 제련소 등 유해사업장 조사에 착수하였다. 그리고 정부의 후원을 받아 전국의 사업장 근로자 건강진단을 실시하여 이 제도를 정착시켰고, 사업장의 보건관리자(의사) 교육을 실시하여 수료자들로 구성된 대한산업보건협회를 창설하였다(1963). 한편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신설된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실시를 도와 초대 중앙심사위원으로서 보상판정기준 제정에 공을 세웠다. 그리고 1971년 진폐증 환자를 수용하기 위하여 서독 MISEREOR 재단의 지원을 받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산업재해병원을 신설하였다.

또한 1970년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의 봉제공장에서 여공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호소하여 분신 자살한 전태일씨 사건의 수습대책으로서 정부가 전국 6개 지역에 세운 근로복지의원을 각 의과대학이 맡아 지원하게 되어 전국적 지부조직이 이루어졌다. 당시 수명의 직원으로 시작된 대한산업보건협회는 현재 12개 지부에 1,000명 가까운 직원이 근로자 건강을 위해 일하고 있다.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센터도 발전하여 40명의 교직원들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현안에 대해 제일 먼저 앞장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근로자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하여 헌신적인 노력과 함께 수많은 연구업적을 내고 있다. 또한 1972년부터 WHO와 직업보건 협력연구기관으로서 국제적 활동을 하고 있으며, 조규상 교수는 30년간 WHO, ILO본부의 전문위원으로서 기준제정 등 많은 공헌을 하였다.

조규상 교수는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창립 초창기부터 교수로서 참여하여 재직 33년간 중앙의료원 의무원장 12년, 의과대학장 6년간 보직을 맡아 수행하면서 명동, 강남, 여의도, 의정부 등 8개 부속병원 발전과 의과대학, 간호대학, 대학원 그리고 5개 연구소 관리운영에도 지도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는 가톨릭 의료기관의 산 증인으로 불리고 있다. 그의 공적으로 1991년 정년 퇴임에 있어 가톨릭 재단에서는 로마교황청으로부터 성 그레고리오 은제 대훈장을 수여하였고 정부에서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