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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학회 명예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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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우주 (1918 ~ 2007) 선진 약리학을 섭렵하고 한국 약리학의 터전을 닦은 대학자이며 교육행정가 (헌정일 : 2014-04-08)

공적사항

이우주 교수는 1941년 세브란스 연합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약리학 연구를 시작하여 우리나라 약리학의 지평을 새로이 한 세계적 약리학자이자 교육자이다.

이우주 교수는 1918년 6월 6일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1941년 세브란스의전 졸업 후 이세규 교수 지도로 약리학연구를 시작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 와중에 미국 국무성 인사교환 프로그램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미국 위스콘신대학교에서 당시 세계적 약리학자였던 AL Tatum 교수 지도로 1년 반 동안 약리학 연구와 실험을 하였다. 그곳에서 그는 열악한 상황에 있던 한국의 약리학 수준과 세계 최고수준의 미국 약리학 연구사이의 커다란 차이를 보고 큰 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학문적 바탕을 공고히 하여야 한다는 신념으로 대학원 과정을 새로이 밟기로 마음먹고 1955년 제2차 유학을 떠났다. 그를 만난 위스콘신 대학 약리학 주임교수인 FE Shideman(미국 약리학회장 역임)은 그가 한국의 정교수이며 한국의 의학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으므로 힘든 학위과정을 택하지 말고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를 가지고 Post-Doc 연구원으로 연구하라고 권유하였다. 그러나 그는 40이 다된 나이에 대학원 정규과정 학생으로 입학하여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3년 만에 Ph. D. 학위를 받았다. 학위를 받자마자 위스콘신 대학은 그의 연구업적과 학문적 능력을 높이 평가하여 1년간 visiting professor로 임명하였다.

그는 미국에서의 연구를 토대로 “心筋 catecholamine의 意義”라는 주제로 미국 국립보건원(NIH)으로부터 1960년에 5년간 총 $40,000의 연구비를 받았다. 이는 당시로는 아시아 지역 학자에게는 처음 지급되는 NIH 연구비이어서 일간지에도 소개될 정도였다. 이 연구비로 그는 최신 연구 장비를 구입할 수 있었으며 미국에서와 같은 수준의 연구를 수행?할 수 있었다. 그의 연구주제는 심장과 자율신경계에서의 catecholamine의 역할이었으며 이 분야에서 그의 연구는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그의 학문적 위치는 그의 연구 결과가 Circulation, J Pharmacol Exp Ther, Brit J Pharmacol등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잡지에 30여편의 논문을 발표한 것으로 충분히 입증되고 있다.

그는 1947년 5월에 박주병, 주인호, 오진섭 선생 등 7명의 약리학자들과 함께 대한약리학회를 발족하였다. 1965년에는 대한약리학회장 역임하면서 우리나라 약리학의 세계화에 기여하였다. 1981년 학술원 정회원에 선임되었고 1961년 삼일문화상과 1983년 학술원상을 수상하였다.

이우주 교수는 1972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의 교육목표를 설정하고 세포분자생물학과 행동과학 과목 신설을 통한 통합강의 도입, 임상의학 교육 강화 등 의학교육 교과과정의 쇄신을 도모하였다. 이것을 계기로 국내 많은 대학이 교과과정 개편을 단행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강의는 명 강의로 매우 유명하였으며 특히 연구를 통하여 얻은 몸에 밴 지식을 전달하므로 학생들이 이해하기 매우 쉬웠다. 그는 연구나 학문에 관하여는 열정과 끊임없는 노력, 철저함을 몸소 보이고 실험을 통한 진리탐구를 강조하였다. 그러기에 책을 보는 것은 집에서도 할 수 있으므로 연구실에서는 늘 실험하라고 가르쳤다. 또한 학자로서의 긍지와 명예를 존중하라고 가르쳤다.

그는 교육에서 의학용어와 우리말교과서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1956년 영한의학사전을 편찬하였다. 그는 우리말 의학용어가 상당부분 일본식 용어를 그대로 쓰고 있는 것이 민족의 자존심 문제라는 의식에서 정년퇴임 후 10년이나 걸려 “의학대사전(醫學大辭典)”을 편찬한 집념과 열정을 보였다. 또한 1956년과 1960년에 미국의 대표적인 약리학 교과서인 Grollman’s Pharmacology 를 우리말로 번역하여 학생들이 보다 쉽게 약리학을 공부할 수 있게 하였다. 나아가 1984년에 그가 직접 편찬한 ‘약리학 강의’(현 ‘이우주의 약리학 강의’)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약리학 교과서로 전국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한편 그는 연세대학교 대학원장(1962)과 총장을 맡아 우리나라 대학원 교육과 연구정책을 주도하였으며 연세대학교가 한 단계 도약하고 발전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는 현대 한국사에서 최대 격동기이었던 1975년 4월부터 1980년 6월까지 연세대학교 제7대 및 제8대 총장을 역임하면서 연세대학교를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그의 학문적 업적과 사회적 공헌으로 국민훈장 동백장, 국민훈장 무궁화장, 대한민국 학술원 학술상, 동아의료문화 저작상 등 많은 훈장과 표창을 받았으며 교육에 관한 공로로 명예법학박사를 수여받았다.

요약컨대, 이우주 교수는 이 나라 의학연구 특히 약리학 연구를 개척하고 이끈 선각자이시며 학문의 방향을 제시하고 후학들을 양성한 위대한 교육자이다. 나아가 우리나라 대학의 역할과 학문적 위치를 높이신 교육 행정가였다. 2007년 4월 25일 별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