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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학회 명예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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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양재모 (1920 ~ 2018) 예방의학의 태두로서, 가족계획의 국제적 최고 권위자 (헌정일 : 2014-04-08)

공적사항

우인(又仁) 양재모 교수는 대한민국의 의사로서 국내외적으로 많은 역할을 수행하여 우리나라 의료 및 사회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는 국내보다 외국에 더 잘 알려져 있는 가족계획의 세계 최고 권위자로, 그가 이룬 평생의 업적은 고귀한 정신과 더불어 후학들에게 훌륭한 귀감이 되고 있다.

양재모 교수는 1920년 경상북도 상주에서 태어났다. 서울로 유학을 와서 휘문고등보통학교를 1938년에 졸업하고 6년 뒤 세브란스 의과대학(現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하여 1948년에 졸업하였다. 의과대학 재학 시 신탁통치반대운동, 한글 보급운동 등 사회활동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졸업 후 1953년 봄부터 세브란스의과대학 위생학 강사로 교수생활을 시작하였다. 이듬해 미국 미시간대학교에 유학하여 보건학석사를 마치고 1955년에 귀국하여 의과대학 학생과장을 맡았다. 의료정책과 관리분야에 관심을 갖고 의료이용에 관한 연구에 매진하였던 그는 우선적으로 인구문제를 해결해야 하겠다는 판단 하에 사단법인 가족계획협회를 창설(1961)하고 적극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당시 정책결정자들에게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인구문제 해결이 급선무라는 사실을 이해시킴으로써 가족계획이 국책사업으로 채택되어 활기를 띄게 되었으며, 불과 수년 만에 가족계획사업이 정착하여 세계적인 성공사례로 국제적인 평가를 받게 되었다. 1965년에 국제연합 자문위원으로 인도에 3개월 간 주재하였고, 이듬해에는 6개월간 존스홉킨스 보건대학원의 초빙교수로, 2개월은 미시간대학교 인구연구소 초빙교수로 미국에 체재하였으며, 1967년에 세계학술원의 회원이 되었다. 1968년에는 연세대학교에 인구 및 가족계획연구소를 설립하였다. 한국의 가족계획사업은 새마을운동과 함께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성공사례로 자리매김하였고, 양재모 교수는 대한가족계획협회(現 가족보건복지협회) 창설자로 회장과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양재모 교수는 가족계획사업을 하면서 지역사회에서의 연구에 필요한 사회조사방법론을 도입하고 보건통계학, 보건사회학, 보건경제학 등 관련 학문들과 연결함으로써 의학, 특히 예방의학과 보건학 분야에 터전을 잡도록 하는데 절대적인 기여를 하였다. 한편 의과대학 교무과장을 거쳐 1972년부터 4년간 학장을 역임하면서 지역사회의학의 개념을 비롯한 새로운 교육과정을 도입하였고, 강화지역사회의학사업을 통해 의과대학생과 간호대학생의 교육 및 지역사회의학 발전에 심혈을 기울였다.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을 1977년에 설립하여 초대 원장으로 일하였으며,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에 4년제 보건과학대학을 1979년에 국내 최초로 설립하였다. 1982년에는 연세대학교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으로 취임하여 광혜원 100주년사업 등을 추진하였으며, 국내 최초로 재활병원을 설립하는 등 철학 있는 행정가로서 역량을 발휘하였다.

가족계획의 성공적인 도입으로 국민훈장 목련장(1972)을, 평생 예방의학과 의학교육에 봉사한 공로로 정년퇴임시 국민훈장 모란장(1985)을 수훈하였다. 상허문화대상을 1991년에 수상하였으며, 같은 해 존스홉킨스 보건대학원 창립 75주년 때 세계적인 보건인(75 Heroes of Public Health)에 선정되었다. 대한보건협회의 보건대상(1992),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에서 수여하는 오천혜(George C. Worth)상을 제1회로 수상(1999)하였고, 국제가족계획연맹에서 수여하는 파이오니어 월드상을 제1회로 수상(2000)하였으며, 제7회 서재필 의학상을 수상(2010)하였다.

가족계획에 관련되는 국영문 연구보고서는 열거할 수 없이 많으며, 저서로 <위생학 상권>(1956), <보건통계학>(1957) 등의 교과서, <국민의료총론>(1984), 자서전인 <사랑의 빚만 지고>(2001) 등이 있다. 위와 같이 양재모 교수는 한국 예방의학의 학문적 기틀을 잡고 발전을 주도한 예방의학의 태두로서 전쟁 후 한국의 인구문제를 가족계획사업의 성공적인 도입으로 해결하였으며,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을 설립하고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학장 및 연세대학교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을 역임하며 교육자이자 행정가로서 눈부신 역량을 발휘하였다. 그는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의사로서의 진정한 본을 후학들에게 보여주었으며, 후학을 키우는 큰 스승으로서 평생을 일관하여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