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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학회 명예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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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국진 (1925 ) 법의학 발전의 초석을 다진 법의학사의 산증인 (헌정일 : 2014-04-08)

공적사항

문국진(文國鎭) 교수는 1925년 평양에서 태어나, 평양고급중학교를 졸업하고 1955년 서울대학교의과대학을 졸업하였다. 동 대학에서 1965년 박사학위를 받았고, 1988년에는 콜롬비아퍼시픽대학교에서 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선생은 “사람의 생명보다도 권리를 다루는 의학”이라는 말에 이끌려 법의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1955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창립멤버로 법의학과의 의무관으로 시작하여 1967년 법의학과장으로 임명되었다. 미국에서와 같이 검시만을 전담하는 법의관( medical examiner)제도가 없는 우리나라는 대학에 법의학교실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선생은 1970년에는 고려의대에 우리나라 처음으로 법의학교실을 창설하였고 다시 동 대학에 법의학연구소를 설립하였으며 1976년에는 대한법의학회 창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1973년부터 1년 동안에는 Milton Helpern 박사의 초청으로 뉴욕대학교 의과대학에서 객원교수로 활동하면서 부검 등의 법의학 실무를 익히고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였다. 법의학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선생은 이후 2,000여건 이상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에 대한 법의학 감정을 시행하면서 우리나라 법의학 발전의 초석을 다졌다. 선생이 걸어온 길은 개인적인 것을 넘어 우리나라 ‘法醫學史’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선생은 법의학 실무뿐만이 아니라 연구 분야에서도 뛰어난 업적을 발휘하였다. 당시 법의학 에서는 혈청학적인 방법으로 개인을 식별하려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선생은 Rh 혈액형을 발견한 Wiener와 공동연구로 Clerodendron Trichotomum(한국명 누리장)이라는 우리나라 식물에서 추출한 응집소 연구를 통해 ‘Cl형’이라는 새로운 혈액형을 발견하여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것은 이후 새로운 5 종류의 lectin을 이용한 개인식별법 개발로 이어졌다. 새로 개발한 방법을 활용하여 당시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었던 여러 친자확인 관련 사례들을 해결하였고, 우리나라 법의혈청학(유전학)의 시작점을 마련하였다. 인권이나 법의학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이른 선생은, 법의학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검사가 검시(檢視, postmortem investigation)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법의지식, 수사관들이 과학수사를 하기 위해 필요한 법의지식, 의사들이 검시(檢屍, postmortem examination)를 함에 있어 필요한 법의지식, 중독사 판단에 필요한 약해(藥害) 관련 지식, 진료 과실여부를 판단하는데 필요한 의료법학 등의 전문서적뿐만 아니라, 국민들을 대상으로 법의학에 대한 계몽과 교양을 높이기 위해 실제 사건을 다룬 법의교양서 등 모두 50여권의 서적을 발간하였다. 이는 법의학 전공자뿐만이 아니라 법조인 그리고 일반인들에까지 “사람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의학이 필요하고, 그 가운데 법의학이 있다”는 점을 알리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이와 함께 선생은 외국과의 교류를 활발하게 진행하여 일본법의학회, 미국법의학회, 영국법의학회의 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국제법의학회 한국 대표를 역임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인정받아 선생은 1963년 국무총리 표창, 1968년 대통령 표창, 1977년 세계평화교수아카데미상 수상, 1986년 고려대학교 학술상 및 1989년 대학민국학술원상 등을 수상하였다. 선생은 1987년부터 학술원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와 함께 서울대학교, 연세대학교 등 여러 대학교에서 법의학을 강의하였고 경찰전문학교, 사법연수원, 법무연수원 등에서 법조인이나 수사관을 대상으로도 법의학을 강의했다.

1990년 현직에서 물러난 이후 선생이 벌여온 활동은 더욱 놀랍다. ‘인권 침해’는 살아 있는 사람만이 대상이 아니다. 고인이 된 사람들의 이름도 명예롭지 못한 경우가 있는데, 문헌이나 예술작품 등에 대한 연구를 통해 사인이나 질병과의 관계를 구명하여 혹시나 침해된 옛 사람들의 권리를 구제하기 시작하였다. 선생은 예술과 의학 또는 법의학을 접목시킨 것을 법의병적학(法醫藝術病跡學 Medicolegal Art Pathography)이라 칭하고 여러 음악가와 화가의 사인을 바로 잡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미술작품 속에 가려져 있는 의학적인 사실들을 새롭게 해석하기도 하였으며, 관련 서적을 12권 펴냈다. 그리고 법의학을 위한 선생의 열정은 우리나라 모든 법의학자들의 열정으로, 사람의 권리를 존중하는 선생의 마음은 우리나라 사람 모두의 마음에 남아 참다운 복지 사회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