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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학회 명예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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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 (1936 ) 다학제 치료법으로 종양학의 새 지평을 연 의학자 (헌정일 : 2014-04-08)

공적사항

1936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난 김병수(金炳洙) 교수는 培材高를 거쳐서 1961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군의관 복무를 마친 후 한미재단에서 가난한 유학생에게 주선한 미해군 수송선을 타고 미국 유학길에 올라 의과대학 부속병원의 수련을 거쳐서 소아과 전문의가 되고 보스턴의 하버드의대와 Dana Farber Cancer Center와 Boston Children’s Hospital 에서 종양학 연구와 진료의 길을 걸었다. 1973년 골육종에서 ‘high-dose methotrexate with citovorum rescue and radiotherapy’로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였고, 전이 골육종을 완치시킨 논문이 넬슨 소아과 교과서에 인용될 만큼 한국 종양학 학자로 눈부신 활동을 하였다.

김병수 교수는 1970년 초 황무지나 다름 없던 우리나라에 돌아와서 종양학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 온 몸을 바쳐 헌신하였다. 연세대학교는 1960년 말 일본 정부의 대외기술원조계획의 도움을 받아 1969년에 연세암센터를 설립하고 대학병원에서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현대적 의미의 암 치료를 시작했다. 그러나 암치료의 중심축의 하나인 항암요법 전문가가 없어 당시 박대선 총장과 김효규 의무부총장이 직접 보스톤을 방문 김병수 교수를 설득하고 또 김 교수는 보장된 미래를 외면하고 기꺼이 모교의 요청을 받아들여 1974년 귀국하여 이후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평생 모교에서 암 환자치료와 우리나라 종양학 발전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 사실상 1970년대 우리나라 암 환자 치료는 외과적 수술에만 의존하였고, 수술이 가능했더라도 전이와 재발을 방지하는 항암치료를 하였으나, 김병수 교수는 각 학문분야가 함께 암치료에 협조하는 ‘multidisciplinary’ 개념을 한국에 처음 정립했다. 수술로 치료가 되지 않는 소아의 급성백혈병, 림프종, 암치료에 약물요법이 필수인 각종 소아암 환자에서 새로운 다학제 치료법으로 세계적 수준의 암치료 성적을 성취하였다. ASCO 총회에서 위암수술 후 항암면역요법이 생존율을 향상시키는 강연을 비롯하여 SCI 논문 200편을 발표하였다.

김병수 교수의 학문적 행정적 지도력은 우리나라 최초 대학병원 암센터인 연세암센터 원장 (1979~1993년) 직을 수행하면서 꽃을 피웠다. 노후된 방사선치료장비를 보사부의 후원으로 고성능방사선치료기자제 도입으로 골수이식 등 최신기술을 국내 처음 도입하였다. 또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 암등록사업인 강화지역 암등록사업은 김 교수가 연구기금으로 기부받은 2000만원을 1982년 예방의학교실에 출연하여 시작되었고 1997년 IARC에 한국 강화지역의 암발생률이 등재되면서, 한국의 암 발생 자료가 처음으로 국제 공인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김병수 교수가 가장 큰 보람으로 여기는 업적 중의 하나가 1990년 해태송당암 연구기금 30억원을 바탕으로 기초 암 연구의 연구 기반을 마련한 것이었다.

1989년부터 2000년까지 대한암학회 이사장, 부회장, 회장을 맡아 한국 종양학의 초창기 발전을 이루고 암과 연관된 학회를 이끌어 크게 발전시키고 의학자로서 한국과학단체총회 회장으로 선출되어 정부의 큰 지원을 받아내어 기초과학과 응용과학 진흥에 일생을 바쳤다.

연세대학교 총장으로 재임하면서 한총련사태로 파괴된 학교를 복구, 정부지원으로 대학시설을 증축하고 가장 뜻있는 일은 세계적 규모의 세브란스병원을 정부, 군, 시, 구청까지도 정치력을 발휘해서 건축허가를 승인받아 가능하게 하므로 연세의료원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