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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학회 명예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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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기홍 (1921 ~ 1986) 혈액은행 설립 등 헌혈운동의 선구자, 임상병리학의 초석을 다진 의학자 (헌정일 : 2014-04-08)

공적사항

김기홍 교수는 1921년 2월 17일에 함경북도 명천군의 호족이자 항일운동에 앞장섰던 경주 김씨 가문에서 태어나 경기중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4학년 때 신사참배 거부로 상급학교 진학이 국내에서는 어려워 경기중학교를 1939년 졸업 후, 모친의 권고로 일본으로 건너가 히메지고등학교에 입학하여 1942년 졸업했다. 일본인들의 선망의 대상인 동경제국대학 의학부에 유일한 조선인으로 입학하였다. 그러나 군국주의에 염증을 느껴 종전 1년을 앞둔 1944년에 귀국하여 경성제국대학 의학부로 전학하여 1947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1회로 졸업하였다.

1948년부터 서울의대 위생학교실에 재직 중 6.25전쟁이 발발하자 자진 입대하여 8년간을 동부전선과 육군병원에서 복무하였다. 당시 수도육군병원 병리시험과 과장으로 5년간 근무하였고 미국고문관들로부터 병리검사(임상병리)의 중요성에 자극받았고 특히 많은 부상자를 위한 혈액을 미군으로부터 공급받아야 하는 현실을 개탄하여 1954년 수도육군병원에 혈액은행을 설립하고 이후 헌혈운동에 지속적으로 매진했다. 그 후 미국 레터만 육군병원에서 임상병리학 수련을 받고 귀국하여 1958년부터 2년 동안 국립중앙의료원 병리과 수석의무관으로 근무하다가, 1960년 우석대학교 의과대학 (현 고대의대) 교수로 부임하여 교무처장, 부속병원장을 역임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임상병리기사 교육기관인 의학기술초급대학을 설립하여 학장을 겸임하였다.

1972년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부임하여 한양대의료원에 최초의 중앙검사실체계를 운영하였다. 1980년 의과대학 학장으로 부임, 기초의학교실육성에 매진하였다. 1983년 병원장으로 임상교수를 위한 중앙교수연구실을 설립하였다.

김기홍 교수는 일반국민들을 상대로 헌혈운동을 전개하고 1969년 한국헌혈협회, 그리고 1975년 대한혈액관리협회를 결성하여 회장직을 맡아 관련법령 제정, 적정 설비 및 간염 검사 등을 도입하였다. 아울러 세계 최초로 건강할 때에 피를 혈액원에 맡겼다가 필요할 때 본인과 그 가족이 무료로 수혈을 받을 수 있다는 ‘혈액예치제도’를 정착시켰으며 1981년 그 업무를 대한적십자사로 이관하여 현재의 헌혈제도로 정착되게 되었다. 또한 대한수혈학회를 결성하여 1985년 회장직을 역임하였다. 1986년 췌장암으로 와병 중에도 한국헌혈운동사 발간을 주도하였다.

한편 대한병리학회 제2부에 속해 비주류 취급을 받던 임상병리학의 독자적인 발전을 위하여 대한임상검사정도관리학회(1976년) 및 대한임상병리학회(1980년)를 결성하여 초대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이후 우리나라 임상병리학(현 진단검사의학)의 발전에 기여했다. 2006년 대한진단검사의학회 제 47차 학술대회에서 그의 공적을 기리는 20주기 추모 강연회가 6개 분야에서 ‘Advances in Laboratory Medicine’의 주제로 개최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