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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학회 명예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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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주걸 (1914-2006) 우리나라 신경외과학 개척의 선구자. (헌정일 : 2013-03-26)

공적사항

청봉 이주걸은 1961년 3월 11일 대한신경외과학회를 창립하여 초대회장과 4년간의 회장직을 역임하며 대한민국 신경외과를 이끌었다. 그리고 1973년부터는 국제교류를 활성화하는 등 대한신경외과학회를 오늘의 반석위에 올려놓았다.

이주걸은 1914년 함경남도 북청에서 출생하여 2006년 92세로 작고하였다.
일제강점기에 광주고등보통학교 재학시절 광주학생사건이 일어나 항일운동에 참여하였다. 법학을 지망했지만 학생운동으로 낙인이 찍혀 대구의학전문학교에서 의학의 길을 걷게 되었다. 대학시절 축구팀의 센터 포워드를 맡았고 대구의 오토바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1938년 대구의학전문학교를 졸업 후 일본 나고야대학 의과학교실에서 뇌수술을 하여 직접 뇌피질 전파도를 검사하여 그 연구에 4년간 몰두하여 학위논문을 만들게 되어 1942년 2월 15일 졸업후 4년만에 의학박사 학위를 임상연구로 획득하였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서 약2개월 동안 공산통치하에 들어갔고 그동안 전상환자를 치료하게 되었다. 인천상륙작전 직전에 도피하여 입대하여 우리 육군군의관 소령에 임관하여 많은 전상환자를 치료하였고 4년 8개월 만에 제대하여 서울여자의과대학으로 복귀하였다.

한국전쟁 중에는 덴마크의 신경외과 의사가 부산에 와서 뇌수술을 하고 미육군 군의관이 야전병원에 와서 우리나라 의사들과 같이 근무하게 됨으로써 우리나라 신경외과 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다. 미군 군의관인 카날 헤이즈 중령과의 친분으로 1958년에는 서울여자의대 교수로서 워싱턴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당시 여자의과대학병원의 장비는 한국전쟁으로 완전 파괴되었고 미8군의 도움으로 몇 가지 기본 장비를 갖추었다. 그 후 여자의과대학에 우리나라 최초로 신경외과가 독립되어 여러 신경외과 전문의사가 배출되었다.
1958년에는 미국의 Walker 교수와 미시간대학을 방문하고 돌아와 여자의과대학에서 훌륭한 제자를 많이 배출하였고 신경외과의 최신의학 기술을 도입하는데도 열중하였다. 1957년 여자의과대학에서 이름을 바꾼 수도의대 부학장 겸 부속병원장, 1960년 경북의대 학장을 역임하였고, 1961년에 대한신경외과학회를 창설하여 초대 회장에 취임하였다.

대학교수로서뿐 만 아니라 1960년 이주걸 신경외과를 개원하여 개업의로서의 진료, 연세의대 외래교수, 대한신경외과학회 회장, 대한간질학회 회장, 대한의학협회 윤리위원장, 기획이사, 원로의사 모임인 인수회 의원, 핵전쟁예방 한국 의사연맹 회장, 서울국제사이언스클럽 회장 등 국내외 사회활동을 활발히 하였다. 1999년에는 팔순이 넘은 나이에 건강명상법이라는 책을 발간하였다.

우리학계에서 신경외과는 불모지에 가까운 초창기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오늘의 대한신경외과학회의 눈부신 발전과 수많은 신경외과 인재를 양성한 위업은 우리 의학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