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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학회 명예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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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한용철 (1930 ~ 1999) 탁월한 교육자, 뛰어난 의료 행정가로 활동한 의학자. (헌정일 : 2012-03-29)

공적사항

한용철은 대한민국 최고의 내과 의사였으며, 탁월한 교육자, 뛰어난 의료 행정가였다. 호는 방원(方圓)이다. 그는 1930년 1월에 서울에서 태어나 매동국민학교와 경기중학교를 졸업했고, 1949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의예과에 입학하여 1950년부터 2년간 육군 중위로 임관하여 군복무를 마친 후 1956년 같은 대학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다. 졸업 후 서울의대 조교로 교직을 시작한 그는 이후 같은 대학에서 전임강사, 조교수, 부교수를 거쳐 1978년 정교수로 승진하였다.

1959년 8월부터 2년 동안의 미네소타 의과대학 연수는 개인에게는 물론 우리나라 내과학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2년간의 미국 연수를 통해 의사/의학자로서 도약을 이룬 그는 폭넓은 병력청취, 탁월한 신체검진, 예리한 의학적 판단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내과 의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당시 그의 문하에서 지도를 받았던 후학들은 그에게 받았던 유형 무형의 교육이 자신들에게 무엇보다 큰 영향을 미쳤다고 입을 모은다. 한용철은 1988년부터 1990년까지 2년 동안은 대통령 주치의를 맡아 나라에 봉사하기도 했다.

그의 행정가로서의 능력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대단했는데, 그가 맡았던 직책의 일부만 추려도 다음과 같다. 서울대학교 보건진료소 소장(1980-1982), 서울대학교병원 내과 과장(1978-1986), 서울의대 내과학교실 주임교수(1982-1986), 서울대학교병원장(1986-1990), 대한결핵학회 회장(1975-1977), 대한결핵협회 회장(1983-1986), 대한내과학회 이사장(1983-1986), 대한노인병학회 회장(1983-1991), 한국심장재단 이사장(1993-1999), 삼성의료원장(1994-1997).

한용철의 출중한 업적은 수많은 수상 및 훈장으로 기려졌는데, 유한결핵상(1983년), 벨기에 레오폴트 2세 사관대장 훈장(1986), 콜롬비아 국가공로대십자훈장(1987), 국민훈장 무궁화장(1993), 미국흉부질환학회 특별공로상(1997), 중외박애봉사상(1999) 등이 있다. 이에 더하여 1990년에 펴낸 수상집 '서울에서 펴는 꿈'으로 동아의료문화상(1990)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후학들이 본받아야할 그의 가장 뛰어난 점은 따뜻한 마음이다. 당시의 일반적인 의사상과는 달리 군림하지 않고 친근하게 환자를 대하던 의사였던 그가 곧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던 모습은 후학들의 기억 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겨우 일흔에 세상을 떠나 제자들을 오열하게 했던 그는, 서울대병원장이나 대통령 주치의로 출세했던 의사로서가 아니라 무재칠시(無財七施)를 몸소 실천하던 따뜻한 의사로서 제자들의 가슴 속에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