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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학회 명예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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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기용숙 (1905 ~ 1974) 한국의 미생물학 발전과 후학교육에 생애를 바친 교육자. (헌정일 : 2012-03-29)

공적사항

기용숙은 1929년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동교 미생물학교실에서 유일준 선생 지도하에 미생물학 연구를 시작하였다. 1974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오로지 한국의 미생물학 발전, 후학교육과 일선 방역조사 연구사업에 종사하며 많은 학문적 공헌과 진리탐구의 철학정신을 후학들에게 심어준 분이다.

기용숙은 1929년부터 당시 유행하던 발진티프스 병원체를 규명하고자 노력하였다. 1932년부터 1943년까지 유일준 교수의 추천으로 다롄 시에 있는 남만주철도주식회사 위생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하며 각종 생물학적 제재의 검정 실무를 담당하면서 당시 만주지역에 유행하던 각종 전염병 연구에 종사하였다. 페스트와 콜레라 등이 유행할 때에는 만주대륙 유행지 현장에 파견되어 방역사업에 직접 종사 하였다.

한편 면역학적 연구로 항원 항체의 성분 분석과 면역반응의 원리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여 항원 항체 침전물의 항원성, 디프테리아 톡소이드 항톡소이드 침강물, 혹은 폐렴균 SSS 항체 침강물 등으로 면역한 토끼면역혈청의 침강반응, 각종 말혈청(항독성, 항균성말혈청, 또는 정상 말혈청)의 항원 구조와 면역항체분획, 및 항원항체반응의 기초적 이론을 정립하였다. 또한 페스트균의 倉內씨 SIF 항원으로 제작한 예방약으로 인체 접종시험을 실시함과 동시에 그 면역 말혈청을 페스트 유행지에서 직접 환자에게 투여하여 치료효과를 입증하였다. 그 후 계속해서 페스트균의 모든 항원, 즉 Pest envelope P항원, 장기추출물 C항원, 한천 C항원 및 균체항원으로 포르말린 처리항원, 톨루엔 처리항원, 페놀 처리항원 등을 분석 비교하여 envelope P항원의 방어능이 월등함을 입증하였다. 이후 30여종에 달하는 항혈청을 제조하여 폐렴구균의 혈청형 결정법을 제시하고 혈청형 진단법을 표준화 하였다.

해방 후 1946년 5월에 중국 광동지역에서 선박 편으로 인천으로 귀국한 귀환 동포를 중심으로 콜레라 대유행이 있었다. 이때 보건당국의 요청으로 방역반이 기용숙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24,535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방역사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하였으며, 1963년, 1964년, 1969년, 1970년에 콜레라 유행, 1967년과 1969년에 장티푸스 유행 때도 방역사업에 큰 공적을 남겼다. 그 후에도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뇌염, 디프테리아, 백일해 등 크고 작은 전염병이 있을 때마다 방역지도위원으로 발병초기부터 유행이 끝날 때까지 발병 현장을 왕래하면서 병원체를 분리하고 환자 혈청을 채취하며 유행 본태를 파악하여 차후 대책을 수립하곤 하였다.

1966년 월남 전쟁이 한참일 때 국군이 월남전에 참전하게 되자 현지에 파견되는 국군, 군의관에게 열대지방에서 유행하는 질환과 이에 대한 예방책을 교육시키면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열대의학연구소를 설치하여 계속 파병되는 군의관의 실무교육을 실시하고 페스트, 콜레라 등의 진단 및 예방법 지침을 수립하고 지도 교육을 하는 한편 월남 현지를 직접 방문하여 문제점을 손수 점검하였다.

기용숙은 해방 후 경성의학전문학교 교수로 있다가 미국 뉴욕주 알바니 주립 미생물학 연구소에서 연구생활을 마치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미생물학 교수로 부임하여 1974년 10월 13일 유명을 달리할 때까지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지혜와 노력을 후학교육에 바쳤다. 1954년에 이화의대 미생물학교실을 재정비하여 김찬수 선생에게 교실 운영을 맡기고 1956년에 부산대학교 의과대학 미생물학교실을 창설하여 양학도 선생을 주임교수로 추천하고, 1957년 3월에 가톨릭의과대학 미생물학교실을 창설하고 이종훈 선생을 주임교수로 이끌어 주었다. 1970년에는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미생물학교실 창설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이와 같이 거의 황무지였던 한국 의과대학 미생물학교실 창설에 전력을 하면서 학생교육과 연구에 몰두하며 후학들을 하나씩 자리 잡게 초석을 놓아 주셨다. 또한 기용숙은 초기 학술단체의 창설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였는데, 1945년 해방이 되자 우리나라 미생물학의 선구자인 허규(許逵), 최영태(崔永泰), 기용숙 등이 모여 조선미생물학회를 창립하였다. 기용숙 교수는 1948년부터 1959년까지 11년간 및 1967년과 1969년을 포함하여 14년간을 학회 회장직을 역임하면서 한국 미생물학 발전을 위하여 전력하였다.

이어 1969년 가톨릭의대 성모병원에서 이용각 교수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신장이식수술을 실시하게 된 것을 계기로 조직적합성 검사를 실시하였고, 대한이식학회를 창립하여 초대 회장에 취임하였다. 1970년부터는 우리나라 면역학이 뒤떨어진 것을 역설하면서 후학들을 이끌어 면역학회 창립을 서둘러 1974년 7월 20일에 대한면역학회를 창립하고, 월례심포지엄을 실시하여 상호 지식을 교환하는 장을 만들었다.

이렇듯 기용숙은 해방 후 어려운 여건 하에서도 직접 실험실에서 혹은 전염병 발생현장에서 방역 사업의 기틀을 다지며 이론 정립과 응용을 동시에 실천하는 한편 확고한 과학철학을 이념으로 후학교육에 힘써 오늘날의 대한민국 미생물학계를 이룩한 공로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