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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학회 명예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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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고병간 (1899 ∼ 1966) 외과 및 흉부외과학의 개척자였으며 경북대학교를 설립하고 경북대학교 총장, 연세대학교 총장과 문교부 차관을 역임한 대학교육 행정가 (헌정일 : 2012-03-29)

공적사항

고병간은 1899년부터 1966년까지 생존하였던 외과 및 흉부외과학의 개척자였으며 경북대학교를 설립하여 경북대학교 초대 및 2대 총장, 연세대학교 총장과 문교부 차관을 역임하는 등 탁월한 대학교육의 행정가였다.

의주에서 태어나 신영소학교를 마치고 선천에 있는 신성중학교에 진학하였으나 1919년 3·1독립 운동이 터지자 중학생의 몸으로 앞장서다 체포되어 평양형무소에서 1년 6개월의 옥고를 치러야했다. 그의 나이 20세였다. 형기를 마치고 나온 그는 학교와 선교사의 배려로 5학년으로 복학하여 그 다음 해에 졸업하고 의사가 되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1921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여 1925년에 졸업하였다.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외과교실의 러들러 교수 밑에서 2년간 수련을 마친 후 1927년 함흥에 있는 기독교계 병원인 제혜병원 외과과장으로 부임했다. 이때부터 기독교 신자로서 박애주의를 실천하여 환자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았으며, 34세에 함흥 중앙교회 장로가 되어 의료봉사 사업과 기독교 선교 사업에 힘을 기울였다.

1934년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 제국대학 의학부에서 흉부외과를 전공하고자 3년간 연구에 몰두하여 인체 내 항체발생에 대한 연구로 1940년 의학박사 학위를 받게 되었다.

그보다 앞서 1937년 4월에는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오긍선(吳兢善) 교장의 권유로 모교인 세브란스의전 외과교수로 취임하였다. 당시 결핵은 불치의 병으로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 만연되어 많은 사람이 죽어가던 시절 그는 이런 환자를 외과적 폐절제로 완치하겠다는 일념과 교토제국대학 시절 일본인 교수에게 배운 지식을 토대로 1947년 국내 최초의 개흉술을 시행하여 성공하였다. 1954년 결핵퇴치 사업의 공로자로서 표창을 받았고, 1955년 제2대 대한결핵협회 회장을 맡아 결핵퇴치의 선봉역할을 하였다.

1945년 해방이 되고 미군정이 시작되자 영어에 능통한 그는 고등 교육 및 의학 교육 심의위원으로 활약하기 시작 그해 대구의과대학 학장으로 발탁되었다. 1949년부터는 대한적십자사 경북지사장을 역임하였으며 1950년 국립경북대학교 추진위원회의 위원장으로 피선되었고, 1951년에는 당시 문교부 장관이었던 백낙준 박사의 천거로 문교부 차관으로 발탁되었다. 1952년 국립경북대학교를 국립종합대학으로 정식 인가받아 초대 총장에 취임하였다. 그는 1947년 8월 포르투갈에서 열렸던 국제 암학회에 윤일선과 같이 참석하고 귀국길에 미국에 들려 그곳 의학계를 둘러보던 중 미국 흉부외과계의 눈부신 발전상에 놀라 이것을 계기로 귀국 후에는 폐절제술에서 첫 수술을 성공시켰다.

1959년 제2대 경북대학교 총장으로 재선되었으나 4.19혁명으로 사임하고 1960년에는 연세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하여 다음해 9월까지 재직했다. 그는 총장 사임 후 세브란스병원장이 되어 학생지도에 헌신했고, 1964년에는 숭실대학 학장으로 옮겼다. 1966년 12월 전국 대학 총장회의 석상에서 회의 도중 뇌출혈로 쓰러져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사망 이듬해인 1967년 경북대학교 개교기념일을 기해 경상북도 유지들에 의하여 그의 흉상이 경북대학교 본부 정원에 세워졌다.

요약하면 고병간은 일제 강점기인 1919년 3.1 운동에 앞장서다 20살의 젊은 나이로 체포되어 1년 6개월간의 옥고를 치른 독립 애국지사였을 뿐만 아니라 일찍이 기독교 신자로서 외국 선교사 설립 함흥 제혜병원 외과부장, 장로(함흥 중앙교회, 대구 제일교회), 계명기독대학 이사(1959-1967년)로서 의료 봉사활동과 기독교 교육활동을 통해 기독교 박애주의를 실천한 종교인이기도 했다. 세브란스의대를 졸업한 외과의사로서 2번에 걸쳐 외과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흉부외과의사로서는 결핵 퇴치 운동에 앞장섰으며, 국내 최초의 개흉술을 시행한 의학자이자 개척자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대구의과대학 학장을 시작으로 국립 경북대학교를 설립하여 초대 및 2대 총장, 연세대 총장, 숭실대학 학장, 문교부 차관 등을 통해 수많은 업적을 이룩한 탁월한 교육 행정가였다.

참고 문헌

1. 의학박사 정구충 저 : 한국의학의 개척자2.
2. 결핵 인물 열전 : 흉부외과의 개척자 고병간(보건세계, 2001년 8월호)
3. 서울대학교 한국의학인물사 편찬위원회 : 한국의학인물사, 태학사, 2008년
4. 한국의학원 : 우리나라 의학의 선구자. 한국의학원, 199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