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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학회 명예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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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선근 (1900 ∼ 1966) 본격적으로 소아과학을 연구한 우리나라 최초의 소아과 의사. (헌정일 : 2011-03-29)

공적사항

이선근 교수는 1900년 1월 23일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나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경성제국대학 소아과학교실에서 본격적으로 소아과학을 연구한 우리나라 최초의 소아과 의사이다.

이선근 교수가 경의전을 졸업한 1924년은 일본이 식민지 교육 정책을 전환하여 대학을 설립하기로 하고 경성제국대학 예과가 개교한 해였다. 그는 총독부의원을 거쳐 2년 후에 개설된 경성제대 의학부의 조수로 들어가 수련을 계속하였다. 당시 우리나라 소아과학은 불모에 가까운 상태였다. 그보다 앞서 소아과를 전공한 의사로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세브란스의전의 구영숙이 있을 뿐이었다. 따라서 이선근 교수는 한국에서 소아과학을 공부한 최초의 소아과 의사였다.

그는 1930년경부터 동아일보 등의 지면을 통해 소아과학에 관한 지식을 보급하는데 열성을 기울였다. ‘엄한기의 소아 위생‘ 등을 통해 어린이가 관념적으로 뿐 아니라 생리학 해부학적으로도 어른과 다른 존재임을 밝혔다. 1931년 한 해 동안 그는 10여 편의 대중적 의학 논설과 1권의 책을 집필하고 1회의 학술 발표를 했으니, 이 무렵의 그가 근대 소아과학 지식을 습득하고 그를 알리는 데 얼마나 열성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그 뿐 아니라 그는 이해 9월에 개최된 조선의사협회 제2회 총회에서 간사로 당선되어 의사협회 일에도 관여했다. 이토록 바쁜 생활 속에서도 학술연구에도 집중하여 ‘내분비 장기와 혈액 및 장기(Katalase)와의 관계’ 그리고 ‘유아기에 있어 질환이 체격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을 발표했고, 그 뒤의 계속적 연구로 1941년 일본 규슈제국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성제국대학 소아과에서 수련을 마친 이선근 교수는 1934년 경성부립병원 소아과장과 의장으로 적극적 임상 활동을 하다가 1936년 서울 수송동에 이선근소아과의원을 개원하였다. 장안의 명의로서 왕성한 진료를 하던 중 1942년 폐결핵에 걸려 2년 간 투병 생활을 하였다.

1945년 광복과 더불어 이선근 교수는 경의전 소아과학교실 주임교수로 취임했다. 그리고 1946년 경의전과 경성대학 의학부가 통합되어 국립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소아과 교수가 되었고, 1948년 11월에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제2부속병원장을 맡았다. 한편 1945년 10월 개최된 대한소아과학회 창립총회에서 초대 회장으로 선출되어 이 후 10여 년간 회장을 하였으며, 물러난 뒤에는 ‘지위가 격하 된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대한소아과학회 서울지회장을 맡았다. 후학들에게 지위나 체면에 연연하지 않고 소아과학의 발전을 위해 할 일은 해야 한다는 자세를 몸소 보여준 것이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군에 입대하여 4년간 군의관으로 복무하였다.

1954년 10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복직하여 전후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성심껏 진료와 연구, 교육에 매진하였다. 그러나 후학 양성에 매진하려던 그의 결심은 다시 질병 때문에 꺾였다. 1958년 경 부터 건강이 나빠진 그는 1959년 학교를 사직하였다. 일 년여 투병생활 끝에 다소 건강을 회복한 그는 1966년 별세할 때까지 이선근소아과의원을 지키면서 기고문과 ‘육아전서’, ‘임신과 육아’ 등의 저서를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