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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학회 명예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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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문호 (1922 ∼ 2004) 한국 현대의학의 태동을 견인한 학자이며, 대한의학회 탄생의 주역으로 의사국가시험 제도를 정착시킨 의학계의 큰 스승. (헌정일 : 2011-03-29)

공적사항

청봉 이문호 교수는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혈액학과 핵의학을 수학하고 이를 우리나라에 적용하여 핵의학과 혈액학, 신장학, 갑상선학 분야의 신학문을 도입한 의학자이다. 그는 해방 이후 핵의학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의학계를 태동시킨 학자이기도 하다.

이문호 교수는 1922년 10월 황해도 수안군에서 태어나서 해주동중학교를 졸업했다. 1940년 경성제국대학 의예과에 입학해서, 1946년에 경성대학 의학부를 졸업하였다. 졸업 후 모교에서 유급조교로 내과를 전공하던 이문호 교수는 미 국무성 유학 장학생으로 미국 유학을 준비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미국 유학의 꿈을 접고, 제36군병원 군의관으로 진료하였다. 전쟁 후 DAAD 장학생에 선발되어 1954년에 독일의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하일마이어 교수에게 사사했으며, 그의 지도로 1957년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문호 교수는 1957년 귀국 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복직하여 핵의학적 방법론을 이용하여 내과에 여러 분야의 연구에 전념하고 67명의 박사를 배출하는 등 교육과 연구에 전념하였다. 이와 같은 꾸준한 연구와 노력으로 1960년 5월 30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에 우리나라 최초로 방사성 동위원소 진료실을 신설하고 초대실장을 역임하였다. 1962년에는 의학연구에 공을 인정받아 제3회 삼일문화상을 수상하였다. 방사성 동위원소 진료실의 연구성과로 IAEA 및 혈액표준위원회(ICSH)의 위원으로 국제활동도 활발히 하였다. 그 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1975년에 제 20회 대한민국 학술원상을, 1988년에 대한민국 국민훈장 모란장, 1992년에 대한적십자사 인도장 (금장), 1995년에는 독일십자공로 대훈장, 1997년 대한수혈학회 적십자 의술공로상 등을 수상하였다. 1977년부터 1988년까지 1963년에 설립된 서울대학교 암연구소 4대 소장을 역임하였다. 1988년에는 대한암연구재단을 설립하였다.

1988년 2월 이문호 교수는 서울대학교에서 정년퇴임하였다. 정년퇴임 이후 아산재단의 서울중앙병원 초대원장에 취임하였다. 그 간의 의학 연구, 진료 및 교육의 경험과 지식을 다하여 서울중앙병원의 근간을 이룩하였다.

이문호 교수는 1961년 11월 대한핵의학회를 발기하여 12월에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다. 1966년에는 혈액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1977년에는 갑상선연구회를 결성하고 초대회장으로 선출되었다. 1962년 대한내과학회 학술부장 그리고 1974년 대한내과학회 초대 이사장으로 선출되었다. 이문호 교수는 연구뿐만 아니라 의학교육 및 의학계 전반에 애정과 관심을 보였다.

1972년부터 1994년까지 대한의학협회 분과학회협의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전문의시험 제도의 개선 및 정립에 기여하였고, 마침내 대한의학회의 창립을 주도하였다. 또한 1988년 의사국가시험원을 창립 발기하고 원장을 역임하면서 의사국가시험 제도의 질적 향상 및 제도발전을 이룩하는데 기여하였다. 이문호 교수는 2004년 12월 82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

이문호 교수는 한국전쟁 후 핵의학과 혈액학, 갑상선학 분야의 신학문을 도입하여 한국 현대 의학의 태동을 견인한 학자며, 대한의학회의 탄생의 주역으로 오늘날의 발전을 이루게 한 장본인이며, 의사국가시험 제도를 정착시킨 학식과 인격을 갖춘 의학계의 스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