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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학회 명예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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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윤치왕 (1895 ∼ 1982) 우리나라 산부인과학과 군진의학 분야의 개척자. (헌정일 : 2011-03-29)

공적사항

윤치왕 교수는 영국 글래스고대학 의학부를 졸업한 후 의학교육자이자 의료 행정가로 사립과 관립기관을 넘어서는 활동경력, 군의관으로서의 행정 경험 등 다양하고 독특한 경력을 보였다.

윤치왕 교수는 다른 초창기 한국 의료인과 달리 의학을 영국에서 학습하였다. 그의 형인 윤치호의 영향으로 1919년 영국 글래스고대학교 의학부에 입학한 윤치왕 교수는 1925년 그 학교를 졸업하면서 영국 의사면허증을 받았다. 그는 1927년부터 귀국하여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의 강사로 근무하기 시작하였는데 미국인 산부인과 교수 허스트와 함께 교육과 진료를 하면서 그의 통역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윤치왕 교수는 허스트의 뒤를 이어 산부인과의 교수로 임명됐다.

1930년 산부인과 분야의 보다 전문적인 지식을 쌓기 위해 1년간 영국에서 연수하였다. 세브란스의전의 일본 문부성 지정을 위해 교수들의 일본 박사학위가 필요한 상황에서 윤치왕 교수는 1933년 일본으로 떠나 1936년 교토제국대학 산부인과학교실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산욕열, 자간증 등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하던 그는 1941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의 부속병원장을 맡으면서 행정가로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해방 후 윤치왕 교수는 1946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겸 제2부속병원장으로 활동하는 동시에 통합된 의사회의 성립을 위해 노력하여 1947년 조선의학협회가 발족하는데 일익을 담당하였다. 조선의학협회의 발족과 동시에 조직된 조선산부인과학회에서 그는 초대 회장에 선임되었다.

1949년 육군 군의관 중령으로 입대한 윤치왕 교수는 그해 7월 대령으로 진급하였고 같은 달 제1육군병원 병원장에 임명되었다. 1950년 8월 육군의무감으로 임명된 윤치왕 교수는 1953년 9월 육군 군의학교 교장으로 임명되기 전까지 육군 의무기구의 대폭 확대, 군의 요원의 안정적 확보, 의지창의 발족 및 의안부의 설치, 신의술의 도입(마취과 및 신경외과) 등 군진의학의 발전에 여러 가지 업적을 쌓았다. 1953년 9월 육군 군의학교 교장, 1954년 3월 병원기지사령부 사령관, 1954년 6월 경남지구위수사령관, 1956년 11월 육군 제2군관구 사령관을 역임한 윤치왕 교수는 1959년 3월 정년 퇴역하였다. 대한민국 창군 이래 최초의 정년 퇴역이었다. 퇴역 후 그는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부회장, 대한의학협회 회장, 대한결핵협회 회장 등 각종 사회단체에서 활동하였고, 1963년 8월 경기도 인천시 북구 부평동에 윤산부인과의원을 개업하여 산부인과 의사로서 활동하였다.

윤치왕 교수의 업적은 산부인과와 군진의학분야로 나눌 수 있다. 산부인과 분야에서 윤치왕 교수는 의료선교사의 뒤를 이어 세브란스의과대학,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산부인과학교실을 담당하였고, 대한산부인과학회의 효시인 조선산부인과학회 초대, 2대 회장을 맡아 대한민국에서 산부인과학의 개척자로서 산부인과학이 정착되는데 기여하였다. 군진의학의 경우 군의제도의 정착과 마취과, 신경외과 등 새로운 학문분야의 개척 등의 업적을 달성하였다. 특히 군진의학은 식민지배를 거치는 동안 한국인이 접근할 수 없는 분야였다는 점에서 윤치왕의 활동이 군진의학의 성립과정에서 가지는 의미는 크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