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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학회 명예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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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황기석 (1924 ~ 1997) 핵의학과 혈액학의 태동에 헌신한 의학자 (헌정일 : 2018-03-27)

공적사항

청허(淸虛) 황기석 교수는 한국의 핵의학, 갑상선학, 혈액학 태동기의 주역으로 해당 학문 연구와 환자진료에 일생 동안 정진한 학자이자 따뜻한 마음을 소유한 의사였다. 1924310일 목포에서 태어나 목포보통학교와 목포상업전수학원에서 수학하며 청년기를 보냈다. 대학입학 자격검정고시를 합격하여 1944년 경북의대의 전신인 대구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여, 1948년 해방 후에 학교명이 변경된 경북의대를 졸업하였다

 

이어서 경북의대 부속병원에서 의사로서의 생활을 시작할 당시 6.25 전쟁으로 군복무를 하였으며 전쟁이 종전된 이듬해인 1954년 소령으로 전역하였다. 새로운 선진 지식에 대한 갈망으로 전역한 해에 곧바로 미국으로 건너가 매사추세츠 Baystate Medical Center와 뉴욕의 Mt. Sinai Hospital에서 내과를 전공하고, 다시 Long Island Jewish-Hillside Medical Center에서 혈액학을 전공하여 신의료기술을 습득하였다.

 

황기석 교수는 1958년 귀국하여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에 혈액진료실과 혈액은행을 창설하여 후학양성과 환자 진료에 힘썼다. 1961년에 동물에서 골수이식을 시행하는 실험을 한국최초로 시행하여 경상 문화학술상을 수상하였다. 1961년 초에 경북대학교 부속병원에 방사성 동위원소실을 신설하여 핵의학 실험을 시작하였다


1962년에는 동위원소실을 동위원소과로 승격 발전시켜 갑상선과 혈액질환 진료에 핵의학적 응용을 시작하였다. 1963년에는 핵의학 영역의 최신지견을 습득하기 위해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 UC Berkeley에서 1년간 수학하며, 1965년 한국인 최초로 미주핵의학회지에 Evaluation of hepatic photoscanning with radioactive colloid gold란 논문을 게재하였다. 1964년도에 귀국하여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에 핵의학교실을 국내 최초로 개설하고 의과대학에서 핵의학 강의를 시작하였다.

 

황기석 교수는 1989년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정년퇴임 후에도 대구가톨릭의과대학에서 10여 년간 후학 양성과 환자진료를 지속하였다. 황기석 교수는 재생불량성 빈혈에 대한 식견이 깊어 1976년 일본교토의 국제혈액학회에서 발표한 지견은 혈액학의 바이블로 통하는 Blood라는 단행본에도 인용되었다

 

황기석 교수는 핵의학과 혈액학에 대한 개인적 학문 성취와 의학자로서의 정열을 보여줌과 동시에 학회 및 교육활동에도 열정적으로 임하여, 경북대학교 병원장, 대한병원협회 부회장, 대한혈액학회 회장, 경북의대 학장, 대한핵의학회 회장, 대한의학교육학회 부회장, 대한내과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또 황기석 교수는 환자에 대한 배려로도 유명하였다. 환자 개개인의 특수한 상황과 입장을 고려하여 실행 가능한 최적의 치료방법을 환자마다 다르게 선택하였으며, 이러한 인도적인 진료 방식은 당시 동료와 선후배에게 모범이 되었다. 황기석 교수는 1997년 타계하기까지 후학양성에 정진하며 아픈 이들에게 따뜻한 인술을 베푸는 그의 노력은 지금까지도 많은 제자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황기석 교수의 1989년 경북대학교 의과대학 정년퇴임식 고별 강연의 한 구절이 지금 이 시대의 후학인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경종을 울린다. 교수가 하루 허송하면 이 나라 학계가 하루 후퇴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