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규 언연세의대 명예교수
필자의 수집벽은 소위 ‘라떼’ 국민학교와 중학교 통지표의 ‘취미’를 적는 칸에 몇 장 가지고 있던 우표를 근거로 당당히 ‘우표 수집’이라고 썼던 희미한 기억에서 시작되었다. 젊어서는 여행지에서 눈치 보며 구입하던 기념용 티스푼으로 품목이 바뀌었고, 20여 년 전부터는 ‘어린 왕자’라는 책을 문학적인 면에서가 아닌 수집 품목의 한 아이템으로 하나 둘 모으는 것으로 크게 진화했다. “수집가는 가족이나 주변에서 환영받기 힘든 사람입니다. 시간과 돈을 모조리 쏟아도 항상 부족해요. 하나를 구하면 또 다른 하나가 어른거리죠. 행복하면서도 불행할 수밖에 없는 게 수집가의 운명인 것 같습니다.(채널예스, 2008. 04. 01.)”라는 말처럼 그동안 수집에 여러 가지 어려움도 있었지만, 꾸준히 하다 보니 오늘날에는 덕후가 되어 관련 글을 쓰는 기회도 갖게 되었다.
Le Petit Prince(The Little Prince)는 생텍쥐페리(Antoine de Saint-Exupéry)가 조국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 함락하자 미국으로 망명하여 뉴욕에 잠시 머무를 때 집필하여 1943년 레이날과 히치콕(Reynal & Hitchcock) 출판사를 통해 영어와 프랑스어로 처음 발행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1953년 ‘星の王子さま’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에서는 1956년 ‘어린 왕자’로 번역 소개되었는데, 당시 두 나라의 사회경제와 문화적인 격차에 비하여 매우 일찍 소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비행사와 다른 행성에서 온 어린이의 만남을 통해 세상에 대한 순수하고 본질적인 시각을 제시하는 어린 왕자는 지금까지 650개 이상의 언어와 방언으로 번역되었고 매년 전 세계적으로 5백만 부가 판매되는 전설적인 도서로 알려져 있다(Ref-1).
따라서 2026년은 불문학자 안응렬(1911~2005) 선생이 생텍쥐페리의 ‘Le Petit Prince’를 ‘어린 왕자’로 번역하여 조선일보에 발표한지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조선일보는 1956년 4월 1일 사고(社告)를 통해 안응렬 선생의 번역으로 ‘프랑스 장편 동화 어린 왕자’를 다음 날인 4월 2일부터 연재한다는 사실을 공지했다. 이 연재는 호응 속에 발표돼 5월 17일까지 모두 44회로 게재됐다(Fig-1). 그리고 수년이 지난 후인 1960년 동아출판사가 세계문학 전집 제13권을 생텍쥐페리 작품으로 편집하면서 ‘어린 왕자’가 처음 책으로 출판됐다. 여기에 소개된 어린 왕자는 전집이 유지하는 통일된 편집과는 달리, 가로쓰기를 선택하고 글자 크기와 줄 간격도 다른 작품들보다 크고 넓게 하는 등 여러 면에서 특별하게 편집됐다. 이후 이주훈(1969. 06. 30. 별의 왕자님. 소년소녀 세계문학 전집 25, 계몽사), 안응렬(1971. 11. 10. 아동문학사상 6, 보진재)처럼 전집이나 계간지에 소개되던 어린 왕자가 1973년 문예출판사(김현. 어린 王子, 1973. 03. 20.)와 인문출판사(안응렬. 어린 王子, 1973. 03. 30.)에서 단행본으로 발행돼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Fig-2). 이후 현재까지 350여 명의 역자가 다양한 편집과 디자인으로 어린 왕자를 출간하여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어린 왕자가 1956년에 처음 소개되었지만 1970년대까지는 많은 독자들에게 알려지지 못했는데, 1971년 계간지인 ‘아동문학사상 6’에 ‘쌩떽쥐뻬리 연구’라는 특집으로 어린 왕자 전역(全譯)본이 게재되고 법정 스님이 ‘靈魂의 永遠한 母音 - 어린 왕자에게 보내는 편지 -’에서 “누가 나더러 지묵(紙墨)으로 된 한 권의 책을 선택하라면 주저하지 않고 선 듯 너를 고르겠다. 내게는 ‘화엄경(華嚴經)’이나 ‘바가밧·기타’와 같이 즐겨 읽는 성인의 말씀도 적지 않지만.”이라고 어린 왕자를 극찬해준 산문(散文) 덕분에 1970년대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여 베스트셀러 1위 자리에도 오를 수 있었다 생각한다. 그리고 어린 왕자와 연관된 인연이나 감성을 서술한 글들이 많지만, 필자에게 가장 인상적으로 남아 있는 것은 “정채봉은 원래 소설 지망생이었다. 그런 그를 동화의 길로 이끈 이가 생텍쥐페리다. 뒤늦게 접한 ‘어린 왕자’는 문학청년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처음엔 벌렁 누워서 보다가 점점 옷을 갖춰 입었고 나중에는 무릎을 꿇고 읽었다’고 한다.”라는 경향신문(1999. 11. 09. 27면) 기사인데, 정채봉 작가가 얼마나 감동을 받았으면 이렇게 했을까 하는 마음이다.
어린 왕자 최초 번역자인 안응렬 선생 가족의 기억에 따르면, 1955년 주한 프랑스 공사관 통역관이던 선생이 약 1년간의 파리 주재원 근무를 마치고 귀국할 때 프랑스 동료가 선물로 준 ‘Le Petit Prince(갈리마르, 1955년)’를 읽고 감동을 받았다. 그는 단숨에 번역해 1956년 조선일보에 연재하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필자가 안응렬 선생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은 책 제목을 ‘어린 왕자’라고 번역했다는 사실이다.
1950년대 당시에는 ‘소공자(小公子 Little Lord Fauntleroy)’, ‘소공녀(小公女 A Little Princess)’, ‘작은 아씨(Little Women)’ 등과 같은 번역서들이 있어 ‘Le Petit Prince(The Little Prince)’를 ‘소왕자(小王子)’나 ‘작은 왕자’ 등으로 제목을 정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안응렬 선생이 ‘순수하고, 유순하며, 길들여지지 않은, 선입견이나 편견이 없는, 가능성이 많은, 평화롭고 희망이 있는’ 등 다양한 느낌을 주는 ‘어린’이라는 우리말을 선택한 덕분에 지금도 모든 역자가 ‘어린 왕자’라고 제목을 붙이고 책을 출판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안응렬 선생이 ‘어린 왕자’로 번역한 것은 안 선생이 1956년 창립한 ‘새싹회’ 활동을 하면서 한글과 어린이에 대한 사랑이 깊었기 때문인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다.
번역가 박진영은 ‘번역가의 머리말’(소명출판, 2022년)이라는 책에서 “번역가는 원작을 빛내고 원저자가 돋보이게 만드는 일을 소명으로 삼는다.”라 이야기하고 있는데, 안응렬 선생이 ‘Le Petit Prince’를 ‘어린 왕자’라는 제목으로 번역한 그 자체만으로도 번역가의 소명을 가장 아름답고 완벽하게 수행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늘나라에 계신 안응렬 선생께 ‘어린 왕자라고 번역해 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 이 글의 일부 내용은 조선일보(2026. 04. 01. A25면)에 게재됨.
참고 문헌
Ref.1.
https://www.laposte.fr/pp/collector-4-timbres-le-petit-prince-lettre-verte/p/2126908
Fig.1. 조선일보에 게재된 어린 왕자
Fig. 2. 어린 왕자 번역 도서의 표지
(좌,상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