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소 연경희대학교 의인문학교실
<사례>
53세 여자 환자가 위암 말기로 진단받았다. 환자는 본인의 상태를 잘 이해하고 있었으며 치료 관련한 선택사항도 잘 알고 있었다. 환자는 주치의에게 화학요법 등 적극적 치료 없이 조용히 생을 마감하고 싶다고 분명히 말하였고 이를 서면으로도 남겨 놓았다. 다만 이러한 결정을 남편을 비롯해 다른 가족들은 반대하고 있었다. 몇 주 후 환자는 의식이 흐려졌고 본인의 의학적 치료에 대해 상세한 사항들을 이해하는 능력이 저하되었다. 환자의 남편과 딸들은 주치의에게 지금이라도 항암요법을 포함한 모든 치료를 다 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만약 당신이 해당 주치의라면 이 상황에서 당신은 어떠한 선택을 내릴 것인가? 또, 올바른 선택이 되기 위해서는 가족과 어떠한 대화를 나눌 것인가?
대한의료커뮤니케이션학회
사례와 같이 임상 현장에서는 어려운 선택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과거 온정적 간섭주의와 달리 이제는 의료현장에서 환자치료의 전반적인 목표(overall goals of care)를 정하고, 주요 치료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환자의 개인적인 가치, 목표 및 선호도를 고려하여 함께 결정하는 것을 장려하고 있다. 이처럼 최근 환자중심진료와 공유의사결정 등의 기본이 되는 ‘환자와의 의사소통’에 가치를 두고 의료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의료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노력하는 학술 단체가 대한의료커뮤니케이션학회이다.
환자는 병원을 찾아 진단 및 검사, 치료를 거치는 과정에서 다양한 의료인을 접하게 된다. 이처럼 의료커뮤니케이션에는 환자와의 소통뿐 아니라 병원 내의 다양한 의료 직종군 사이 다학제 진료를 위한 원활한 의사소통도 포함된다. 따라서 학회에도 의학, 치의학, 간호학 분야의 전문가, 인문학, 사회과학 등 여러 학문 분야의 연구자, 교육자, 학생 등 다양한 배경의 회원들이 모여 학문적 교류와 협력을 통해 의료커뮤니케이션 분야의 발전을 주도하고 있다.
역지사지(易地思之) 할 수 있는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하여
후배 학생들과 좋은 의사에 대해 이야기 나눌 때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역지사지’이다. 즉, 본인이나 가족이 아파서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에게 느끼는 고마움 혹은 서운한 부분을 되짚어 보면 어떤 의사가 좋은 의사인지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진료 현장에서 가장 많이 하는 착각 중 하나는 내가 의사로서 생각하는 ‘최상의 의학적 이익’이 환자를 위한 ‘최선의 이익’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환자의 결정이 비록 의사인 내가 생각하기에 현명하지 못하더라도, 환자가 처한 사회적 환경이나 상황, 혹은 환자의 가치관 안에서는 가장 적절하고 훌륭한 선택일 수 있다. 이러한 부분을 늘 염두에 두고 환자를 대한다면, 소위 말하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이나 informed consent, shared decision making 등과 관련한 여러 윤리적 문제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 찾아가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어려운 의료환경에서도 우리가 처음 품었던 꿈을 잃지 않고 묵묵히 걸어갈 수 있는 한 방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