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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EWSLETTER No.165 November 2024

기획특집

◎ 기초의학의 전망과 개선 방안의 모색

김 우 미고신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교육의 목표는 일차 의료를 담당할 수 있는 의사를 양성함에 있다. 나아가 국내 의과대학은 소위 좋은 의사를 양성하기 위해 의학교육에 다양한 콘텐츠를 구성하고자 노력해 왔다. 임상의학의 수준도 빠르게 향상되면서 의학의 전반적인 학술적 기술적 측면, 그리고 의료 장비와 시설을 포함한 진료 환경이 급속하게 발전하였다. 2024년 의료대란이 일어나기 전까지, 비록 보완 개선해야 할 부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의료는 접근성과 신속성, 그리고 전문성에서 선진적인 면모를 갖추어가고 있었다. 국내 의학교육이 세계적 흐름에 맞추어 다각적으로 노력하고 역할을 담당해 온 성과라고 본다. 이면에는 의사를 단순한 의료기술인으로 취급하기도 하고, 의료를 그저 고객의 요구에 마땅히 응해야 하는 서비스 정도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인식도 적지 않다. 쉽게 접할 수 있는 미디어와 범람하는 온라인 정보들에 의해 의학의 전문성은 훼손되고, 전문가를 향한 사회적 존중과 신뢰는 무너지고 있다. 의학교육이 진료 중심의 의사 양성에 집중하는 동안 기본의학교육의 토대는 점점 취약성을 드러내고, 기초의학이 직면한 현실적 문제들이 그 중심에서 부각되고 있다.

기초의학 분야를 두 영역으로 구분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전통적 학문 영역인 과학적 기초의학과 의료인문학이다. 과학적 기초의학은 의학 연구와 임상 진료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학문 영역이지만, 최근 교수 부족 문제에 직면하면서 의학 교육과 연구 역량의 저하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위험에 처해있다. 특히 기초의학 교수진 부족은 기초의학 교육의 안정적 운영과 학문적 발전 가능성을 저해하고 있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연구보고서(이하 한림원 보고서)에 의하면 현재 46세에서 55세 사이의 많은 기초의학 교수가 향후 15년 이내 정년퇴직함으로써 기초의학 분야 교원이 자연 감소될 것이며, 20년 후에는 현재 인원의 50% 이상 감소될 것으로 전망하였다. 이러한 교수진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 각 학회가 최소 5년마다 10명 이상의 기초의학 전공 의사를 양성해야 한다고 보고하였다.1)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보고서(이하 KAMC 보고서)에서는, 기초의학 교수 부족 현상을 심화시킬 수 있는 첫 번째 요인을 직급별 불균형 현상으로 지적하였다.2) 부교수와 조교수층이 부족하여 교육과 연구의 연속성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다. 의사-대학원생의 부족으로 인해 기초의학 교수로 충원될 인적 자원이 줄어들 것이며, 장기적으로 교수진 충원이 더욱 힘들어질 것으로 전망하였다. 두 번째 요인은 의대생의 기초의학 진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다. 의대생들이 경제적 이유 등으로 인해 기초의학 진로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기초의학 분야의 인재 양성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문제는 비수도권 대학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학 간 연구 인프라의 양극화 영향으로 비수도권 대학에서는 기초의학 교수진 충원이 상대적으로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는 비수도권 대학 재학생들의 기초의학 진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더욱 높게 나타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한림원보고서를 근거로 기초의학 인재 양성 방안을 제언한다. 첫째, 기초의학 연구자들에게 안정적 연구 환경과 처우 개선을 제공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체계를 신속하게 마련해야 한다. 기초의학 교육과 연구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지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통합적 지원 프로그램을 구축해나가야 한다. 둘째, 기초의학 인력양성을 위한 대학의 정책과 행정적 지원이 필요하다. BME(기본의학교육)-GME(졸업 후 교육)-CPD(전문직업성 평생개발)간의 연계를 지원하는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대학은 기초의학 교육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 지원체계를 마련하여 기초의학 분야의 인재를 양성하고 교육 역량을 강화시키는데 집중해야 한다. 기초의학 교수진 확보, 연구인프라 확충, 통합적 지원체계 구축을 위해서는 정부와 대학, 그리고 지역사회가 연계된 혁신적 정책 수립과 재정 지원이 필수적이다.

한편 KAMC 보고서에 따르면, 기초의학 교수 응답자의 47.1%에서 현행 의학교육 과정이 개별 과목과 수직·수평 통합과목의 병합된 형태로 운영되고 있으며, 응답자의 과반수가 이러한 교육과정 운영이 바람직하다고 답변하였다. 기초의학 분야의 의사-교수는 기초의학 교육뿐만 아니라 전체 의학교육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이는 의대생들의 인식조사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기초의학 의사-교수의 장점으로는 ‘임상연계 교육’, ‘임상기초 통합적 이해’, ‘높은 의학교육 이해도’라고 응답하였다. 따라서 기초의학 분야 의사-교수 충원을 위하여 의대생들의 기초의학 진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해결할 방안들이 필요하다. KAMC 보고서에 의하면 의대생들이 기초의학 진로를 선택하지 않거나 교수들이 추천하지 않는 이유로서 경제적 이유, 연구 성과 부담, 진로 전환 제약 등을 선택하였다. 연구 참여 경험이 있는 학생일수록 의학 연구와 기초의학 진로에 대한 긍정적 응답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따라서 의대 교육과정을 개편하여 학생 연구를 정규과정으로 도입하거나 비정규 과정 또는 장기적인 연구의 참여 기회를 장려하기 위해 대학의 적극적인 지원이 요구된다. 학생 연구 환경의 조성에는 연구비 지원, 교육과정 개편, 연구시설 지원, 지도교수 인센티브 지원 등이 포함된다. 실제 미국에서는 연구에 참여한 졸업생들의 많은 수가 연구를 지속하는 전일제 연구 교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최근 의학교육학교실 전임교수 중 임상 의사에 한하여 진료를 병행할 수 있는 겸임 교수제를 시행하는 대학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러한 제도를 기초의학 분야에 확대하여 적용한다면 임상교수의 기초의학 교육 참여 기회가 증가될 것이다. 또한 임상 진료와 기초의학 교육 및 연구 병행에 대한 정당한 평가와 보상이 이루어지고, 다양한 교수 트랙제가 도입됨으로써 교육, 연구, 진료 영역의 업적평가 비중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다면 기초의학 진로의 기피 사유인 ‘진로 전환 제약’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숙고할 문제는 ‘기초의학 분야의 학문적 구조 개선을 위한 시도가 필요한가’이다. 해외 의학교육 기관들은 구조 개선에 적극적이며, 미국 의과대학의 기초의학은 우리나라보다 앞서 이러한 변화를 겪고 있다. 기초의과학 분야에서는 교육과 연구의 시대적 변화를 수용함으로써 효율적 방향성을 위해 재조직화 과정을 시도하였다. 2006년에 미국의과대학협회(Association of American Medical Colleges, AAMC)는 기초의학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새로운 구조가 필요하다고 발표하였다.3) 1995년 이후 전통적 기초과학으로 분류되는 해부학, 생화학, 미생물학, 생리학, 약리학의 평균 분과 수가 꾸준히 감소한 반면, 지난 25년간 84개의 새로운 기초의과학 분과가 신설되었다. 특히 학제간(interdisciplinary) 연구 기반의 융합된 기초의과학, 예를 들어 신경과학(neuroscience), 유전학(genetics), 인간의 건강(human health), 공공보건정책(public health policy), 예방의학(preventative medicine focus) 등과 관련된 신규 기초의학 교실이 증가하였다.3) 하와이 의대(University of Hawaii at Manoa)의 교실 분류를 살펴보면 기초의과학에 해당하는 교실로서 해부, 생화학 및 생리학(Anatomy, Biochemistry & Physiology), 세포 및 분자생물학(Cell and Molecular Biology), 병리학(Pathology), 열대의학(Tropical Medicine), 의학미생물학 및 약리학(Medical Microbiology and Pharmacology) 등이 있다.4) 런던 임페리얼 칼리지(Imperial College of London)도 뇌과학(Brain Sciences), 면역학과 염증(Immunology and Inflammation), 감염병(Infectious Disease), 임상과학 연구소(Institute of Clinical Science), 대사와 소화 및 생식(Metabolism, Digestion and Reproduction), 심장과 폐 연구소(National Heart and Lung Institute), 공중보건학(School of Public Health), 수술과 암(Surgery and Cancer) 등의 융합된 단위로 운영되고 있다.5) 이러한 구조 개선은 시대와 현실이 요구하는 방향에 따르려는 획기적인 변혁이다. 템플대학교 루이스카츠의대(Lewis Katz School of Medicine at Temple University)는 2021년 7월에 기초의학 분야의 구조를 개편하면서 그 이유를 더 나은 교육 커리큘럼으로 혁신하고 교수 개발을 촉진하며, 과학적 학문과 임상의 학제간 협력을 최적화하는 연구 성과를 도출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하였다.6) 국내 기초의학 분야도 적지 않은 부담을 안고 있다. 신규 개설된 기초의학 영역이 다양하게 증가하고 있으며, 기초의학 교육 콘텐츠와 연구 주제도 조금씩 변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초의학 분야의 점진적 구조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각 대학이 처한 상황과 역량에 따라, 그리고 학문적 다양성과 전문성을 기반으로 독창적 구조 개혁을 이루어간다면 효율적 다학제 연구와 의학교육의 목표를 실현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기초의학 분야의 다른 영역인 의료인문학에 관한 의견이다. 의료인문학 교육과정은 의학의 학문적 토대를 확장하고 임상의학의 실행을 위한 중요한 영역이다. 의료는 단순히 비즈니스나 복지를 위한 행위가 아니라, 과학에 근거하면서 인문사회적 차원의 실천으로 이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식견을 확장하고 삶과 질병과 죽음에 관한 철학적 문제, 의학과 사회의 커뮤니케이션, 의사의 전문직업성과 윤리성을 바탕으로 실존적인 배움이 이루어져야 한다. 의사와 의료를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을 해소하기 위해서 의료인문학 교육이 강조되고 의사 직역의 자성적인 노력이 요구되기도 한다. 하지만 의사가 돈을 벌 수 있는 분과에만 쏠린다는 비난이 오롯이 의사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사회 보편적인 가치로서, 일등만 살아남는 치열한 경쟁과 생존 자원을 획득하는 데 몰두할 수밖에 없는 현실과도 연관된다. 이는 우리 사회의 기초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오히려 사회 건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의학적 전문성의 적극적인 참여와 개입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의료 현장에서 겪는 고충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법률과 제도뿐만 아니라 시민의식의 고양이 필요하며, 의학적 문해력(medical literacy)도 향상되어야 한다. 미래의 좋은 의사는 일차 의료에 종사하는 진료 의사를 넘어 의사-연구자로서, 그리고 사회 저변과 여러 분야에서 의학적 전문성을 토대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의사이길 기대한다. 미래 의학교육이 지향할 방향이 아닐까 생각한다.

Reference
1)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연구보고서: 기초의학 인력양성을 위한 대학원 교육과 연구 개선 방안. (2023.12)
2)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기초의학교육의 현황과 전망. (2023.11)
3) AAMC, Analysis in Brief, Recent Trends in Basic Science Department Reorganizations.
https://www.aamc.org/data-reports/analysis-brief/report/recent-trends-basic-science-department-reorganizations. 2006;6(1)
4) https://jabsom.hawaii.edu/departments/
5) https://www.imperial.ac.uk
6) https://medicine.temple.edu/news/lewis-katz-school-medicine-announces-basic-science-department-restru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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