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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EWSLETTER No.163 August 2024

의료와 법률

◎ 의학적 판단에 대한 법원의 판단

이 동 필법무법인 의성 대표변호사/내과전문의

내과 전문의가 된 후 사법시험을 공부하면서 처음엔 낯선 학문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공부하면 할수록 법학이 인문학이 아닌 사회과학이고 논리 흐름이 의학과 상당히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다. 병력을 청취하고 진찰을 통해 질병의 대략적 범위를 정하여 필요한 검사를 하고, 검사 결과에 따라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 방침을 결정하여 치료한 후 예후를 관찰하는 환자 진료 순서를 체득한 전문의로서는 사건의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민사, 형사, 행정 등 각각 어떤 법 규정, 법리가 적용될 수 있는지로 범위를 좁힌 다음 구체적 증거관계를 충분히 파악하여 구체적 법령과 법 이론을 적용하여 최종 결론을 내는 법학의 알고리듬에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었다. 오죽하면 민법을 내과라고, 형법을 외과라고 불쑥 나도 모르게 말할 정도였다.

그런데 의학은 새로운 지식이 하루가 멀다시피 쏟아지고 있는 반면에 법학은 그보다 변화의 속도가 느리고 정립된 이론이 변화하는 데에도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어 차이가 있다. 그리고 특히 최근에 크게 발전한 임상의학 영역이나 고도로 전문화된 진료영역에서는 담당 의사가 관련 교과서, 문헌, 환자의 나이, 질병 상태, 건강 상태 등을 모두 종합하여 여러 진료방법 중 합리적이라고 판단하는 한 가지를 선택할 수밖에 없으므로 의사마다 진료방법이나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똑같은 질병 및 환자 상태라고 하더라도 외과 의사는 수술을 선호할 수 있고 내과 의사는 보존적 치료를 선호할 수 있다. 똑같은 진료방법을 적용하더라도 환자마다 반응이 다르고 환자의 상태 역시 시시각각으로 변하므로 결과적으로 보더라도 진료내용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반면에 법학으로는 다양한 법리 의견이 있더라도 실제 판결에서는 대법원의 법률해석 논리에 따라 법리를 적용하고 다양한 결론을 낼 수가 없다.

이처럼 의학과 법학은 각각의 특성이 있는 데다, 매우 전문적인 영역이므로 법학을 공부하지 않은 의사가 법리를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것처럼 의학을 공부하지 않은 법률가가 의학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인간이 만든 현재의 국가사회 제도에서는 의료사고에 대한 분쟁에 대한 민사적 판단이나 형사적 판단을 의학에 관한 충분한 이해가 부족한 법관이 의학 감정을 토대로 법리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데다가 법관은 하나의 분쟁에 대해 다양한 결론이 아닌 하나의 최종 결론만 내어야 한다. 여기서 의료현실과의 괴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의료분쟁에서 의학적 기본 원칙을 준수하지 않아 의사가 변명하기 어려운 사건도 물론 있지만, 상당수의 분쟁 건을 보면 의학적 타당성을 그다지 벗어나지 않았음에도 예를 들어 진료지침을 준수하지 않았다는 사실로 과실을 추정하는 것과 같이 의사로서도 내가 최선을 다한 죄밖에 없는데 무슨 잘못을 하였기에 불법행위라고 하며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지 억울할 때가 종종 있다. 의료분쟁에 대한 민사재판에서는 어차피 환자에게 발생한 손해를 환자/의사 중 누가 부담할지, 얼마나 부담할지의 문제이므로 우리나라에서는 ‘손해의 공평한 분담’이라는 손해배상법 원리에 따라 과실과 인과관계를 비교적 쉽게 추정하고 책임을 제한하는 방식의 판결이 많고, 법원은 어차피 하나의 결론을 내어야 하므로 의사로서도 일정 부분 손해배상 책임을 부득이 인정할 수밖에는 없을 때가 있다. 쉽지는 않지만 이러한 한계에 대해서는 의사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형사재판은 분명히 달라야 한다. 형사재판은 국가가 범죄를 범한 개인에게 형벌을 가하는 절차이므로 무죄 추정의 원칙이 확실히 적용되어야 하고 엄격한 증거에 따라 신중하게 판단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는 형사 절차에서 의료사고 민사 손해배상 재판에서의 과실 추정 판결 문구를 검사가 그대로 인용하여 공소장에 적시한 후 공소를 제기하는 사례는 물론이고 심지어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재판임에도 민사재판에서의 과실 및 인과관계 추정의 법리를 그대로 적용하거나, 환자가 목숨을 잃었거나 중태라는 결과에 치우쳐 유죄추정의 심증을 가지는 판사도 20년 간의 변호사 생활에서 종종 경험하였다. 의료과실 여부를 판단하는 법관은 의학 감정 결과에 사실상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의학적 판단은 재판에서의 판결과 달리 다양한 의견이 존재할 수 있고 특히 고도로 전문적인 의학 영역에서는 전문의마저도 의견이 제각각 다를 수 있으며 어느 의견이 좀 더 옳은 것인지 판별하기 어려울 때가 많은데, 특정 감정인의 의학 감정 결과만으로 이와 다른 판단을 한 의사에 대해 ‘당신의 의학적 판단이 틀렸고 그로 인해 환자가 사망한 것’이라고 판단하여 형벌을 내리는 것은 의학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매우 위험한 일이다.

민사책임과 형사책임은 별개이므로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절차에서 검사가 기소하지 않거나 법원이 의사에게 무죄를 판결한다고 하여 의사가 민사책임까지 당연히 면책되는 것이 아니고 의사에 대해 완전한 면죄부를 주는 것도 아니다. 가뜩이나 무리한 저수가 정책을 고수하는 우리나라에서 젊은 세대의 의사들이 힘들고 분쟁에 언제든 휘말릴 수 있고 처벌의 우려가 커서 필수의료 분야를 기피하고 있던 차에, 이러한 근본적 원인에 대한 대책을 세우기보다 무리한 의대 증원부터 앞세운 최근 정권의 밀어붙이기식 정책에 의해 의료가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법원이 형사재판에서 의료의 특성을 이해·고려하지 않은 채 일벌백계의 원칙만 계속 고수한다면 필수의료가 완전히 무너져 버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어 몹시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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