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성 구전 대한의학회 회장/ 경희대학교 명예교수
생활이 시간의 변환을 맞을 때마다 사람은 새로운 희망을 가슴속에 새긴다. 이것은 실천적 생활철학을 뒷받침하는 삶의 동력이 될 수 있다. 한 개인뿐 아니라 사회 집단도 이런 계기를 통해 미래에 대한 꿈을 갖게 되는 것은 매 한가지다.
지난 2023년 우리나라 의사들이 겪은 일들은 혼란과 절망 그리고 희망이 교차했던 뒤돌아보기 싫고 씁쓸한 그 자체였다. 반추해 보면 의사들을 힘들게 했던 그 모든 일이 국가 사회의 미래와 국민을 위한 일이 전혀 아니고 여(與)든 야(野)든 권력자들의 정치적인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이런 모든 것이 밝혀질수록 허망하고 허탈하다. 권력 의존적 기득권자들이 정치적 이득을 챙기면서 국민을 핑계로 애꿎은 “의료와 의사”를 무차별적으로 폄훼한 것이다. 이런 현상은 결코 새로운 일이 아니다. 과거에도 선거 때만 되면 의료계 그리고 의사들의 문제를 흔히 정치적 이슈로 삼아 요란을 떨어왔다.
정치가의 치부책 속에 기록된 해야 할 일의 목록에 포함되어 있는 듯하다. 물론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시류를 타고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하는 전문가 아닌 전문가, 학자답지 않은 학자라는 자들이 횡행(橫行)하곤 하였다.
정치권력의 수혜자들은 정치적 국면 전환이 필요할 때면 흔히 재벌을 두들겨 팼고, 사학의 비리를 들먹임으로써 역량이 모자라는 지도자의 면모를 감추기에 급급하여 왔던 것은 불편한 기정사실이다. 권력자들의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었기 때문에 부끄러운 이런 현상은 변함없이 지속되었다. 의료계나 의사에 대한 정치적 여론 몰이는 다양한 형식으로 너무도 흔히 시도되었던 일이었기 때문에 이력이 나고 신물이 난 의사들은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지구상의 어떤 나라에서도 보기 힘든 새로운 합법적 난장판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의사들을 더할 나위 없이 황망하게 만들고 있다. “심평의학(審評醫學)”이라는 한국형 괴물의 출현은 권력이 의료와 의사를 억압하고 통제하는 또 다른 형태의 불의(不義)한 일이다. 제도가 패권적 행위를 일삼았다는 불행한 역사의 산물이다. 그래서 의사들은 심평의학의 불합리한 짓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대항하였고 지금도 윤리와 도덕 그리고 의학적 근거를 중심으로 싸우고 있다.
그러나 법률이라는 이름으로 엉뚱한 정의를 내세워 두들기는 법 몽둥이(법봉)의 힘 앞에는 누구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공자는 이럴 때 이의호(已矣乎 : 엉망진창으로 끝장이구나)라고 장탄식을 했다.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하는 의사들이 볼 때 의학적 무지에 더하여 비과학적, 비이성적, 불합리한 판결을 하는 것은 판사들의 만행이다. 하지만 난공불락의 요새와도 같은 법이라는 태두리 안에서 벌어지는 야만적 횡포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다. 그들은 신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제 대한민국의 현대의학은 법의지배를 받고, 법이 정한 대로 행하여야 하는 황당한 의학이 된 것이다.
법정의학(法定醫學)이라는 괴물(monster)을 직면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법(正法)에 의한 합리적 판결만이 과학적이고 이성적인 현대의학을 지키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양보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전문지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의학에 대하여 무지한 판사 몇 명이 모여 구수 회담을 하여 도끼 같은 판사 봉을 내리찍어 의학을 두 동강을 내면 그것도 법률적 정의(正意)에 해당하는 일일까? 법리적인 견해라는 상식을 벗어난 아집과 편견에 빠진 행위는 결국 환자의 생명줄을 두 동강 낸 것이다.
의학적인 전문지식이 없는 사람도 눈 속의 압력을 측정할 수 있고, 뇌파검사를 할 수 있고, 초음파도 촬영할 수 있으며 코로나와 같은 감염성 유행병도 검진할 수 있다고 판결 하였다. 판사들은 판사 봉을 한번 내리치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러면서도 아무 생각도 이유도 없이 법과 정의라는 이름이 새겨진 판사 봉을 빙자한 무지막지한 각목을 휘두른 것이다. 본인들이 무슨 죄악을 저질렀는지도 모르면서 의사와 현대의학을 hammer로 내리쳤다. 의사들을 향해 휘두른 hammer는 곧 판사 자신은 물론 환자를 향하게 된다는 것을 예측하지 못하는 아둔한 자들이다.
한편 새해(2024년) 들어 정부가 뜬금없이 내지르듯 판을 벌인 의사 증원 문제는 고삐 풀린 망아지가 들판을 가로질러 날뛰는 꼴이다. 길이 어딘지 모르고 좌충우돌하는 망아지는 온갖 덫에 걸려 넘어지고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의료과소비라는 호강에 빠져 선거 때마다 과도한 요구를 하는 대중과 정부가 정치적 영합을 했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판단력을 상실한 것이다.
정부나 국회 다수당이나 모두 우리나라 현대의학을 저절로 굴러들어 온 복덩이로 생각하고 이것을 자기들 입맛대로 농단하고 싶은 과욕에 사로잡혀 있다.
울 밑에 선 봉선화는 개구멍을 통해 들어온 업둥이 같은 무자식 가문의 행운의 선물이 아니다. 피를 철철 흘리면서 붉게 피어난 고난의 상징이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나라 현대의학의 모습이 품고 있는 상처뿐인 영광이다. 백번 양보하여 화려한 현대의학이 정부나 정치권력 가들 입장에서 손 한 번 안 대고 코를 푼 격으로 굴러들어 온 복이라고 하자. 그러면 최소한 복덩어리를 잘 간수 하고 오래도록 유지하도록 보살피는 것이 나라와 후손을 위한 마땅한 행동이란 것조차 모르는 모양이다.
우리 스스로 생각하여도 경이로울 정도로 발전한 현대의학을 유지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고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현대의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아주 다양한 의학 저변의 끝없는 의생명과학 분야의 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 이 분야 연구를 의사들이 힘겹게 수행했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연구의 주체가 국가가 되어야 한다. 아울러 이러한 의학을 임상에 적용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은 적절한 진단 방법과 치료에 대한 권고안을 지속적으로 제정하는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임상진료지침이다.
임상진료지침은 각각의 질병에 대한 임상적 경우와 상황을 가정한 권고안이다. 다시 말해 전쟁에서의 전략과 전술의 교범이다. 전 세계적인 의학적 경험과 판단을 취합하고 정리한 환자진료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권고 지침서이다. 그러나 이것을 질병 치료 방침을 결정한 내용으로 생각하면 큰 오류를 범하는 일이고 오히려 임상의학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저해하는 요소가 된다. 임상진료지침은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 필수 불가결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권고의 수준을 적시한 권고안이다.
필자는 지난 10여 년을, 대한의학회를 중심으로 유능한 여러 사람과 같이 일차 의료기관에서 환자 진료에 종사하는 의사 선생을 위한 여러 종류의 질병별 임상진료지침을 제정하는 일에 관여하였다. 개원가의 대부분에서 임상진료지침을 이해하지 못했던 초창기에는 심평원에서 진료비를 삭감하려는 근거를 스스로 만든다는 오해도 받았고, 욕도 많이 먹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십여 년이 지난 지금은 거의 모든 의사 선생이 임상진료지침의 필요성과 진료상의 편익(便益)을 인정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러는 가운데 실질적으로 가장 많은 의학적 혜택을 본 것은 환자들이다. 임상진료지침이 이렇게 되기까지는 질병관리청(과거 질병관리본부)이라는 정부기관의 재정적 후원이 절대적이었다. 임상진료지침의 필요성에 대한 대한의학회의 건의와 개발계획을 충분히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후원해 주신 정은경 당시 본부장께 뒤 늦게나마 진정한 감사를 드린다.
그러나 올해(2024년) 들어 정부의 재정적 문제로 연구·개발(R&D) 사업비가 대대적으로 축소되면서 임상진료지침 개발 연구비가 100% 삭감되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후학들로부터 들었다. 거기에 덧붙여 들려온 정부의 고위당국자와 국회의원들의 임상진료지침에 대한 몰이해성 발언은 귀를 의심하게 하였다.
대학의 질적 성장이 국가 미래의 척도가 되듯이 모든 학문 분야의 연구개발은 우리의 미래에 대한 꿈이며 존립에 대한 일이다. 나날이 다양해지는 질병으로부터 국민의 생명을 지키려는 여러 형태의 의학 발전 속에 임상의학 분야의 큰 보루를 지키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 임상진료지침이다. 지침의 지속적인 개발과 3–5년 단위 개정(의학이 발전하는 것에 발맞추어 개정해야 한다. 그래서 현대의학이다)은 환자의 생명을 지키는 필수 불가결한 일이다. 그러므로 임상진료지침의 개발과 개정 그리고 연구는 반드시 지속되어야 한다. 지금 이대로 주저앉으면 불문가지 때 늦은 눈물의 회한만 쌓인다. 우리 미래의 희망이 사라지는 어두운 그림자가 먹구름처럼 짙게 깔려서는 안 된다.
2024.01.18 대한의학회 정기총회 참가 유감(有感)
학여재(鶴汝齋)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