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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EWSLETTER No.148 April 2023

기획특집

◎ 이공계 의대 쏠림 현상과 재(N)수의 폐해

안 덕 선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우리나라의 이공계 대학에서 의과대학 쏠림 현상에 대한 불만이 종종 제기되고 있다. 이공계는 자연과학인 이학과 산업응용과학인 공학을 통칭하는 단어로 영어로는 과학(Science), 기술(Technology), 공학(Engineering) 및 수학(Math)을 의미하는 STEM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의학은 이공계로 분류하지는 않는다. 이공계는 현대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분야로 우리나라 수출 견인차는 이공계의 산물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국제적으로 대개의 STEM 학위는 평생직장과 고임금으로 인기가 높은 학과로 알려져 있다. 다른 나라에서 이공계 의과대학 쏠림 현상은 찾아볼 수 없다. 우리나라가 국가 주도 경제발전을 시작하던 60-70년대, 이과 계열 중 최고 우수생들이 입학하던 분야는 의과대학이 아닌 이공계였다.

우리나라의 과거시험 전통은 과거급제까지 몇 번이고 재수를 반복하였다. 현 대통령도 사법고시 9수생임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현대적 교육제도에서 대학입학을 위한 고등학교 과정의 재수를 허용되지 않는 나라가 많다. 대학 입시에서 재수 문화의 보편화를 더욱 촉진 시키는 것은 현재의 입시제도에서 정시가 일정 비율로 고정되어 재수를 통한 반복 학습이 수능시험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런 결과로 현재 의과대학 입학생의 70% 이상이 재(N)수 이상의 경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재(N)수 여부를 떠나 의대 정원은 고정되어 있어 연간 3000명을 약간 상회한다.

과열된 의대 입시를 해결하고자 미국식 의학전문대학원 체제가 도입되었었다. 이웃 나라 타이완은 이미 80년대 정부 주도로 5개 의과대학이 미국식 의학전문대학원 체제로 전환했으나 결국 실패로 끝났다. 한 세대 후 우리나라도 양질의 의사를 양성한다는 애매한 구호로 미국식 전문대학원 제도를 추진하였으나 대만과 같이 역시 실패하였다. 의학전문대학원 제도로 과열된 입시 문제를 해결하려던 정부도 미국식 전문대학원제도 도입의 걸림돌인 재수에 대한 민감한 문제는 다루기를 주저하였다. 당시 재수를 없애야 전문대학원제도가 정착될 것이라는 전문가 집단의 조언에 대하여 최고위 교육부 관료는 강남의 어머니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며 재수 문제는 덮어두었다.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성공한 미국은 대학입학을 위한 고등학교 과정의 반복 학습인 재수로는 대학입학이 쉽지 않다. 미국에서 의과대학 입학을 위하여 고등학교 과정을 몇 년이고 반복하였다면 학생에 대한 학업 능력에 대한 해석은 매우 다른 각도에서 조망될 수 있다. 재수로 취득한 높은 수능성적에 시간적 개념을 도입하면 비록 고득점 취득을 하였다고 해도 마치 경기 종료 후 득점으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교과목의 반복 학습을 위한 재수가 아닌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다른 전공을 하거나 사회적 경험이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다.

현재 전체 대학 입학생 중 의과대학 정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매우 미미하고 이공계 인기 학과도 충분히 우수한 학생들이 확보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이공계 대학의 수도 결코 선진국에 비하여 적지도 않다. 이공계 학생이나 지방 의대 학생이 반수를 통해 의대에 진학하거나 상위권 의대로 옮겨가는 현상은 분명 사회적 교육 낭비로 보인다. 국비 지원을 받은 특성화대학의 학생도 반수를 통하여 의대에 진학하고 있다는데 국비 지원에 대한 분명한 원칙이 필요하다. 고교졸업 후 곧바로 의과대학에 입학한 학생이 20% 정도라는 현실은 재수에 대한 개입이 없는 한 현재의 의과대학 쏠림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고 보인다.

재(N)수로 인한 의대 쏠림 현상이 이공계 학부와 특히 대학원 교육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보인다. 그렇다고 의과대학에 득이 되는 것도 전혀 아니고 오히려 점진적인 폐해를 들어내고 있다. 의대 입학을 위한 재수로 누적된 학습 피로에다 6년 동안 엄청난 학습량과 학년 재수인 유급제도에 시달리고 나면 좋은 의사를 위한 의학전문직업성(medical professionalism)형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대 졸업을 위한 평균 재학 기간은 이미 7년이 넘는다. 재(N)수로 인한 폐해는 호기심, 탐구심, 동기부여 등 학업에 대한 진정성이 훼손될 것임은 예측 가능해 보인다. 기초 의학 분야의 연구자도 지원자가 없고 이제 전문의 응시생의 수도 줄고 있다. 몇 년의 재(N)수로 이미 지친 학생이 의과대학이나 전공의 과정과 별도로 다시 4-5년이 소요되는 연구 박사 취득으로 의학 연구자를 양성하자는 계획도 성공률이 낮아 보인다.

하이데커는 <인간은 죽음을 통해 현재의 삶을 반성하고 매 순간에 전력을 다하게 된다.>라고 하였다. 고등학교 과정은 국제적으로 3년이면 충분하다고 본다. 그런데도 의대 입학을 위한 재(N)수와 이에 더하여 재학 중 유급과 휴학, 그리고 졸업 후 의사면허시험, 인턴시험, 전공의시험, 전문의시험 등 또 다른 재수가 기다리고 있다. 재(N)수 문화의 산물인 이공계 의대 쏠림과 이어지는 여러 단계의 또 다른 재수는 의사 배출의 고령화와 의학 발전을 지체시키는 사회병리 현상을 만들고 있다. 차제에 의학계가 쏠림증의 시발점인 의대 학생 선발제도와 함께 유급제도 그리고 졸업 후 재수를 유도하는 각종 시험제도의 선진화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 의학계의 널리 퍼진 재(N)수 문화의 사회병리 현상을 타개하기 위한 노력은 곧 의학의 사회적 책무성(Social Accountability)을 구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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