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무 열 중앙의대 생리학
이번 의학회 소식지의 소확행은 3회(혹시라도(?) 인기가 있다면 연장도 가능)에 걸쳐 의과대학 주변을 소재로 하여 관련 정보 및 해당 대학에 방문 시 찾아갈만한 곳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필자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온 중앙대학교를 필두로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경희대학교, 외갓집이 위치해서 역시 30년 이상의 역사를 알고 지내온 한양대학교의 3개 의과대학 주변을 차례대로 소개할 계획입니다. 혹시라도 소개를 원하시는 지역이 있으시면 순서는 바뀌거나 연장 게재도 가능하오니 많은 피드백을 부탁드리며, 참고로 제 이메일은 heeyun@cau.ac.kr입니다.
80년대 수많은 10대 팬들을 몰고 다녔던 대학농구 시절 중앙대가 한기범, 김유택, 허재 등 스타플레이어의 등장으로 대학농구 정상인 연고대를 연파하고 우승을 차지했을 때 연고대의 패배를 아쉬워하는 팬들 사이에 필자도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사이 중앙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하게 되었고 35년이 지난 지금 필자가 바라본 흑석동(중앙대학교 일대)은 많은 일들과 함께 이슈가 생겨나는 공간이자 매력적이고 특색이 있는 곳이 되었습니다. 1970년 초 한강의 다리가 한강대교를 제외하고 제2한강교(현재 양화대교)와 제3한강교(현재 한남대교) 밖에 없었던 터라 한강 이남의 발전은 해당 다리의 건너편을 제외하고는 큰 발전이 없었습니다. 단지 해당 지역의 건너편인 영등포 내지는 노량진 정도 도심이 조금 발달 되어있어 70년대 말 이후 ‘영동’이라는 표현이 ‘강남’과 많이 혼용되고 있었는데, 그 ‘영동’의 의미가 ‘영등포 동쪽’의 준말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현재 젊은이들 중에는 흔하지 않습니다. 그 만큼 흑석동이 강남의 원조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또한 흑석동에는 적산가옥이 많았습니다. 적산가옥은 적색벽돌을 많이 사용하여 건설한 가옥이 아니고, ‘적들이 소유한 가옥’으로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거주하던 가옥을 의미합니다. 해방이후 대개의 일본인들이 본국으로 돌아감에 따라 먼저 찜하는 사람이 임자가 될 수도 있는 가옥이었지만 대부분 시 내지는 국유지로 변경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적산가옥이 많이 있던 구역은 비교적 흑석동 내에서 부유한 동네였다고 할 수 있고, 중앙대학교를 기준으로 반대편에 있던 구역들은 서울 시내에서도 대표적 달동네에 해당하는 곳이었습니다.
중앙대학교 의과대학의 큰 특징은 전체 대학과 캠퍼스를 공유하기 때문에 타대학과의 교류가 활발한 것이 특징입니다. 이는 40개 의과대학 가운데 몇 개 대학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기도 한데 우선 예술대학을 포함한 4개의 단과대학이 안성캠퍼스에 위치하지만 대부분의 대학이 흑석캠퍼스에 위치하고 있고 특히, 스타의 산실 연극영화학과 또한 흑석캠퍼스에 위치합니다. 물론 해당학생들은 수업의 상당부분을 혜화동에 위치한 드라마센터에서 듣긴 하지만.... 착한 일을 많이 한 날은 유명한 스타들의 모습을 캠퍼스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가끔 의과대학생들이 예과 때 교양수업을 듣다가 유명 연예인이 함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장 저렴한 곳은 빗물펌프장의 공영주차장이지만 자리가 별로 없고, 학교와 병원 사이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는 관계로 학교에 주차하고 젊은 학생들의 모습을 구경하면서 병원을 가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는 방법입니다. 단, 학교나 병원이나 공무가 아닌 경우 주차비가 두 시간에 따라 더블로 올라가는 것은 주의해야 합니다.
학교에서 주차가 가장 널찍한 공간은 310관(대학 내 단일 건물로는 동양 최대 규모)의 지하2, 3층이며 항상 주차 공간이 넘쳐납니다.
이 외에도 흑석동에 대한 정보나 학교 방문의 팁, 소소한 술집이나 맛집을 찾으신다거나, 우리들 본연의 업무인 학술정보나 연구를 위한 팁을 원하신다면 나름 흑석동의 전문가인 필자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하나의 중요한 팁으로 추천 드립니다. 흑석동의 박찬호(?) 내지 백두산(?)을 찾고 싶으시면 서두에 남긴 이메일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 호에는 제가 세살 때부터 서른살까지 살아왔던 회기동에 위치한 경희대학교 의과대학과 의료원, 그 주변을 소개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