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학분야의 기초연구는 지난 30년간 Genomics, Proteomics 등의 발전으로 대변되며, 그 연구들의 산물인 논문의 수도 놀라운 증가율을 보여왔다. 우리나라 정부는 이러한 기초연구를 꾸준히 지원해 왔으며, 그 지원의 근거는 그 연구에서 발견된 유익이 환자의 치료나 지역사회의 보건의료시스템의 획기적 개선을 가져오리라는 믿음이라 생각한다. 또한 ‘의생명(biomedical) 연구’의 큰 축은 기초연구의 훌륭한 결과물들이 희귀난치질환으로 고통 받고 있는 환자들의 치료나 사회의 질병부담 경감에 가능한 빨리 사용될 수 있도록 중개하는 실용연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기초연구에 대한 정부 지원의 증가와 발표되는 논문의 급격한 증가에도 불구하고, 환자에게 도달하는 신약의 수는 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연구투자와 목표간의 간극은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크게 나타나고 있다. 신약개발 주체라고 할 수 있는 산학연병의 협력생태계가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그 이유로는 각 주체가 연구와 관련해 지향하는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라 보인다. 일반적으로 신약개발의 단계는 신약발굴(Discovery), 비임상(preclinical), 임상(clinical), 신약허가의 단계로 나누고 있다. 대부분의 기초과학자나 의과학자들은 자신의 연구결과를 유명 저널에 발표하거나, 성공적인 특허를 획득함으로써 연구의 목적을 달성하였다고 생각하며, 그 이후의 단계는 개발자가 알아서 할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제약회사나 대학 소재 바이오벤처들은 좋은 seed를 기술이전 받거나 자체 개발하여 비임상시험을 마치고 글로벌 제약사 등에 기술 수출하거나, 가능한 경우 초기 임상시험 진입만을 목표로 하는 개발계획을 가지고 간다. 여기서 진료의사의 역할은 드물게 임상단계에 진입하게 되는 약물이 있는 경우 개발사 회의에 참여하여 임상시험의 설계에 의견을 주거나, 임상시험이 개시되면 환자를 모집하여 계획서 대로 진행하는 것에 국한된다고 생각한다. 의사들 스스로도 신약개발은 제약회사가 할 일이며, 누군가 좋은 약을 개발해 주고 그것이 건강보험급여가 되게 되면 그 때 환자에게 사용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의약 생태계 안에서는 각 단계가 효율적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낮다. 즉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 필요한 의약품 제조나 분석기술 등에 필요한 플랫폼 기술개발이나, 바이오마커 개발, human POC 등의 중개임상연구에 대한 장애나 지연에 관심이 없고, 그런 연구에 대한 동인도 낮을 수 밖에 없다. 그 결과로 기초연구의 결과들이 사장되거나,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데 수 년씩 기다리다가 이미 신약으로서의 시장가치를 잃어버리거나, 운이 아주 좋은 경우 조기 기술이전이 되더라도 신약개발의 전주기 경험과 기술의 축적은 기대하기 힘들다.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미국이나 유럽의 정부는 신약개발 R&D 생산성 저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많은 고민과 노력을 하였다. 그들은 문제의 원인이 기초연구와 환자 사이에 놓인 “임상연구의 지연”이라고 결론 짓고, 그 해결책에 대한 고민을 의사단체들과 함께 시작했다. 고민의 결론으로 결국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신약은 환자가 겪고 있는 ‘미충족의료적요구’를 개발에 담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며, 대학의 기초연구의 결과가 바로 산업으로 이전되려면, 하루 빨리 사람에서의 안전성과 의학적 유용성(medical utility)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이를 위해 각국은 새로운 타깃이나 신약후보물질을 연구자주도 중개임상연구로 빨리 이행시키기 위한 이니셔티브들을 시작하였다. 미국은 2004년, NCATS(National Center for Advancing Translational Sciences)를 통해 중개연구, 그 중에서도 ‘중개임상연구’를 강화하였다. 일본 정부는 대학의 유망 seed의 GMP시험약 생산, GLP 비임상연구를 지원하고 있고, ‘Project for Japan Translational and Clinical Research Core Centers’ 사업을 통해 대학에서 나오는 seed를 대상으로 한 중개임상연구의 인프라지원과 연구비를 같이 지원하고 있다. 현재 core center라고 불리는 14개 병원에서만 826개의 연구자주도임상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또한 연구 중인 seed에 관심을 보이는 일본의 중소제약사 등과 매칭하여 회사가 개발에 함께 참여하고 기술을 이전 받도록 유도하고 있다. 영국도 UKCRC를 통해 임상연구네트워크지원 조직과, 정부가 정한 6개 우선지원 질병을 포함 탐색적 임상연구를 대규모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지원 모두 연구비뿐 아니라, 신약허가에 사용될 수 있는 데이터의 질과 환자수를 연구자주도임상시험에서 확보할 수 있도록 연구자임상시험 설계, 모니터링, 데이터 관리, 보고서 등의 수행지원을 포함한다. 일본 등은 자국뿐 아니라 해외의 임상연구 수행까지 지원하여 자국개발 상품의 해외 조기 진출뿐 아니라, 임상연구를 해외의 우수한 seed를 확보하는 open innovation 도구로도 이용하고 있다.

다음으로, R&D 자원의 공유이다. 생태계 각 단계별 주체인 과학자, 의과학자, 의사, 기업 등이 서로가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지, 어떤 연구장비와 시설, 인력, 환자 pool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임상시험 자료가 존재하는지 등에 대한 정보에 대한 접근성과, EMR 등의 big data의 공유 등이 확보된다면 이러한 생태계 내의 협력은 더욱 쉬워질 수 있을 것이다. 영국도 UKCRC에서 이러한 정보를 제공하는 platform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또한 각 제약사의 후보물질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자사가 가진 기술만 가지고는 다음단계로 가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요즘 각광을 받고 있는 바이오의약품의 경우 더욱 문제가 많다. 우리나라가 신약개발이 가능한 생태계로 신속히 전환되려면, 관산학연을 통틀어 분야전문가로 구성된 Dream Team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문제가 되는 병목문제를 해결하고, 여기서 만들어진 기술과 지식을 전 산업이 공유한다면 문제가 보다 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기초연구자들과 임상연구자들 사이의 협력은 누군가 밥상을 차려주어야 하고, 기업이 흥미를 가지고 뛰어들기 전까지는 임상연구를 가능케 하는 GMP, GLP 등 사전 연구를 포함한 연구비와 연구지원이 정부를 포함하여 다양한 경로로 조달되어야 하겠다. 또한 이러한 의약생태계의 주체들이 효율적으로 연결된 국가의료이노베이션시스템은 현재 여러 부처로 다원화된 신약개발 지원시스템으로는 어렵다. 또한 예산과 노력을 투자해 그 데이터의 질이 확보된 연구자 임상시험은 다른 나라들처럼 허가자료로 사용될 수 있어야 연구의 질과 관심이 유지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약개발은 우리 미래에 대한 투자이며, 임상시험의 참여는 미래의 환자와 우리 후손을 위한 고귀한 기여라는 의사들의 관심과 주인의식이 중요하다. 약의 개발부터 안전한 사용까지 의약생태계에서뿐 아니라 환자와 대중, 정부에 대해서도 의사들의 리더십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며, 의학교육 과정에서 신약개발에 관련한 과목과 교육프로그램이 있어야 의사의 다양한 역할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미래를 설계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