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서양의학은 1886년 3월 29일 제중원의학교에서 학생 16명을 모집하여 의학교육을 실시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그 당시 교육과목은 해부학, 생리학, 화학, 세균학, 위생학, 약물학이었다. 이러한 기초의학 지식은 향후 환자진료와 관련된 모든 지식을 쌓을 수 있는 근간이 되었으며, 더욱이 고도로 전문화된 의사를 양성하는 현대의학교육은 그만큼 전문화된 기초교육을 필요로 한다. 우리나라의 기초의학은 해방과 더불어 그 토대를 마련하기 시작하여 1990년대에 일정 수준의 궤도에 진입하는 전성기를 이루었다. 이 시기에는 의과대학 졸업 후 기초의학을 선택하는 졸업생들이 가장 많았으며, 연구방법에서도 선진국과 유사한 수준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그 후 20여년이 지난 현재 우리의 기초의학은 의학계에서, 그리고 사회적으로 어느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까? 현재 의과대학내에서 기초의학의 입지는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이 점차 사라지는 현상과 흡사하다. 우리가 지금부터라도 기초의학의 위기를 자각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노력한다면 국민건강 향상뿐만 아니라 노벨상의 영광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대부분의 의과대학에서 교육목표를 일차 진료의사 양성으로 설정하였다. 이러한 교육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진료역량을 중시하기 때문에 임상의학 교육 위주로 통합강의를 진행하는 교육과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기초의학 강의와 실습은 자연스레 축소되고 기초의학 교육의 목표인 과학적 사고능력 개발은 멀어지게 된다. 축소된 강의시간에 주어지는 강의내용은 그 의미와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학생들에게 기초의학에 대한 필요성은 점차 감소되고 있다. 필자는 이 시점에서 임상의학 교육만을 강조하는 의학자들에게 묻고 싶다. 현재 우리나라 교육과정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마치고 수학능력시험을 거쳐 대학에 진학하는데 초등학교, 중학교 교육과정을 거치지 않고 고등학교 과정만 마치고 수학능력시험을 치른다면 어떨까? 인간이 태어나서 성장하는 과정에는 유년기, 청장년기, 노년기를 거치는 동안 각 단계에서 그 때 습득하는 필수 요소들이 있지 않을까. 마찬가지로 의학교육에서 기초의학교육이 부실하게 되면 결국에는 부실한 의사를 양성하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게 될 것이다.

2012년 세계의학교육연합(World Federation of Medical Education: WFME)은 기초의학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기초의학 교육의 국제기준을 설정하였다. 주 내용은 학부에서 임상의학을 공부하기 위하여 필요한 개념과 방법을 과학적인 측면에서 제공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기초의학 교육의 내실화를 위해서 학생들에게 과학적 역량을 증진시킬 수 있도록 교과과정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Dr. Ignarro의 “의사도 궁극적으로는 과학자여야 한다.”는 의미를 상기해야 한다. 그리고 기초의학 교육의 중요성을 반영할 수 있는 교육정책의 수립이 동반되어야 하고, 의과대학 인증평가 기준에서 기초의학 교육의 필수사항을 강화하고, 의사국가시험에 기초의학을 포함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기초의학자는 연구도 중요하지만 교육자로서 후세대를 위한 교육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기초의학은 WFME에서 정의한 것처럼 임상의학을 위한 바탕으로 순수과학과 차이를 갖는 응용과학으로서 임상에 적용할 수 있는 중개연구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중개연구와는 거리가 있는 기초연구들이 많이 수행되고 있다. 그 원인은 물론 기초의학자 자신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지만 주위의 여건 또한 이러한 분위기를 조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비 측면에서 볼 때 2010년 우리나라의 생명과학분야 연구비는 총 3조4,827억 원이었으며, 이 중 기초의학교실에서 수혜한 액수는 총 1,624억 원으로 생명과학분야 연구비의 4.7%에 해당하는 적은 금액이다. 그러나 연구 성과 측면에서 볼 때 정부에서 투자한 연구비의 성과는 8,709편이었으나 기초의학의 연구 성과는 1,702편으로 19.5%를 차지하는 효율적인 성과를 이루었다. 따라서 이러한 내용은 기초의학분야가 투자 대비 연구결과의 성과가 매우 높은 것으로 투자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분야임을 시사한다.

따라서 기초의학 연구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기초의학 연구가 임상과 연계되는 중개연구에 많은 기여를 해야 할 것이다. 기초의학자 자신이 의학이라는 학문적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순수과학 연구가 아닌 임상을 위한 중개연구를 지향하는 자세를 가져야 하고, 임상교수들에게 문호를 개방하여 다학제간 연구를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다. 또한 범정부 차원에서 기초의학 발전을 위한 R&D 예산지원의 확대가 절실히 요구된다.

의과대학 학생교육이나 연구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교수인력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 기초의학 교수는 2004~20013년까지 10년 동안 87명 증가하였다. 이 중 의사 출신 32명, 비의사 출신 55명이었다. 기초의학 교수에서 의사출신 교수의 비율은 2004년 71.7%에서 2013년 69.3%이지만 전공의 제도가 있는 병리학과 예방의학을 제외하면 의사출신 교수 비율은 50% 수준에 불과하다. 향후 정년퇴직을 예상하면 15년 이내에 의사출신 교수는 70%가 퇴직하는 상황을 초래하고, 기초의학 전체교수의 측면에서는 현재 5명의 교수가 퇴임할 때 1명의 신임교수를 채용하는 추세를 보임으로 향후 기초의학 교수는 절대적으로 감소할 것이다. 이는 마치 우리 몸에서 하나가 사라지면 다른 하나가 보충되어야 항상성이 유지되는데 항상성이 파괴되어 질병에 이르게 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의과대학 졸업생의 기초의학 지원 현황을 살펴보면 1980년대 이전에는 매년 졸업생의 1-2%가 지원하였으며, 1980, 90년대에 가장 높은 지원율을 보였는데 이 당시의 지원자들이 현재 기초의학교실의 연구능력을 향상시키는 주춧돌 역할을 하고 있다. 2000년 서울대, 연세대, 가톨릭대에서 의과대학 출신 조교는 44명이었는데 2014년 서울대 10명, 연세대 8명, 가톨릭대 2명으로 총 20명으로 감소하였으며, 병리학과 예방의학이 포함되어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처럼 기초의학 지원자가 감소하고, 기초의학 교수를 양성하는데 7-8년이 소요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초의학의 미래는 결코 밝다고 말하기 어렵다.

기초의학은 그야말로 의학의 기초가 되는 학문으로 학생들의 과학적 사고능력을 증진시키고, 생명과학의 최첨단에서 임상의학에 중개연구 역할을 수행하여 바이오산업의 주역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벨상을 기대할 수 있는 분야이다. 따라서 필자는 기초의학의 육성을 위하여 다음을 제안한다. 기초의학 교육의 내실화를 위하여 과학적 능력 향상을 바탕으로 한 교육과정을 설정해야 하며, 의과대학 인증평가에서 기초의학 영역을 확대하고, 의사국가시험에서 기초의학 분야를 신설해야 한다. 연구 측면에서는 중개연구를 활성화하고, 범정부 차원에서 국가 R&D 사업을 확대해야 한다. 기초의학 교수 육성 측면에서는 기초의학 전문의 제도를 신설하고, 범정부 차원에서 이를 지원할 수 있는 제도를 수립해야 한다. 우리 의학계 모두가 한 목소리로 기초의학의 육성을 위해 노력한다면 기초의학의 미래는 밝아질 것이다.

(본문에 사용된 자료는 기초의학백서 2013, 대한의학회 보고서 2014에서 인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