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기초의학을 전공하다보면 가끔 전공 이외의 의학적 내용에 관한 지식을 논할 때 과거 학생 시절의 지식을 기준으로 언급하는 경우, 나 자신도 가끔씩 섬뜩함을 느낀다. 30여 년 전의 지식을 가지고 함부로 논하는 것은 학자로서나 의사로서나 바른 일은 아니므로 전공인 생리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타학문 분야의 최근 지식을 공부하는 것도 때론 즐거운 일이라 할 수 있다. 바이러스는 박테리아와 함께 병원성 미생물의 양대 기둥이지만 박테리아와는 달리 생체 내에서만 생존 내지는 증식이 가능하고, 증식 조건 또한 상당히 까다로워 실험실에서 배양하기가 어려운 것이 일반적이다. 대개의 경우 독성(virulence)이 박테리아에 비해 약하지만 박테리아의 경우 항생제나 박테리아 필터에 의해 쉽게 제거 내지는 조절이 되는 것에 비해 바이러스는 아직 제거 및 조절을 위한 약제 개발이 미비한 실정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일반적인 감기(common cold)의 원인 바이러스로 알려져 있다. 모양이 왕관(crown) 모양으로 전자현미경상에서 관찰되기 때문에 만들어진 명칭으로 그 종(species)은 10여개 정도가 알려져 있다. 1960년대에 최초로 동정된 감기의 원인 바이러스(human coronavirus 229E와 human coronavirus OC43)는 물론 2000년대 초반 중국, 홍콩을 공포에 떨게 한 사스(SARS) 코로나 바이러스와 현재 우리나라를 감염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메르스(MERS)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에 속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알려진 바와 같이 RNA 바이러스이며, 26에서 32 킬로염기(kilobases)를 지니므로 RNA 바이러스 중에서는 상당히 크기가 큰 편이다. 사스의 경우 2002년과 2003년에 걸쳐 중국과 홍콩에서는 수천 명의 환자와 수백 명의 사망자를 유발했지만 당시 국내에서는 단지 4명의 환자를 발생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홍콩의 경우 특성상 한국인 거주자가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환자 및 사망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고되었다. 당연한 결과로 그 이후 한국인의 식습관이나 생활환경이 중국인의 큰 관심을 가져온 것이 사실이었다. 메르스의 경우도 현재 세계 2위의 환자발생국이 되었지만 사망률은 아직 사우디의 3분지 1 수준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물론 이후에 후속적인 기초 및 임상연구가 진행되어봐야 정확한 사실을 알 수 있겠지만 한국인의 식습관이나 생활환경이 메르스에도 저항적인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 본다. 바이러스의 경우 자신이 선호하는 세포에서만 증식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코로나 바이러스의 경우 비강을 포함한 상기도에서 증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메르스를 유발하는 바이러스의 경우에는 상기도 뿐 아니라 폐 내의 하기도 특히, 호흡근육(respiratory smooth muscle)에서도 증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도는 일반적으로 비강, 구강, 인두, 후두에서 연결된 기관(trachea)을 포함한 상기도와 기관으로부터 폐포까지 23번 정도 분지되는 하기도로 나누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기도의 경우 특히 17번 가지까지에 호흡근육의 분포가 풍부하므로 이 부위에 바이러스가 증식하여 기능장애를 유발한다면 호흡곤란이 반드시 나타나리라 생각된다. 근자에 메르스 환자로 보고된 동일병원에 근무하는 30대 의사 두 명 가운데 한 명은 일주일 만에 완치판정을 받고 다른 한 명은 에크모(ECMO)를 사용할 정도의 호흡곤란 증세를 보인다는 사실은 아마도 한 사람은 상기도의 바이러스 증식만이, 다른 한 사람은 상기도와 하기도의 바이러스 증식이 나타난 것으로 이러한 차이가 발생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메르스로 인해 온 국민을 공포감에 몰아넣을 수 있는 현 상황과 같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질병 발생상황의 대응에 있어서는 기초와 임상의학의 협업연구인 중개연구와 유사한 개념의 중개치료진(임상의료진과 병원성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기초의료진) 구성이 앞으로 주요 대책의 하나로써 자리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우리나라에도 프랑스의 파스퇴르 연구소와 같은 세계적인 질병연구의 상설 연구기관이 생겼으면 하고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