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병원의 전자의무기록시스템 보급률은 약 60% 수준으로 전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에 있다. 이에 따라 임상활동의 부산물로서 일상적으로 생성하고 수집되는 임상데이터 양도 매년 크게 증가하고 있다. 또한, 컴퓨터 성능의 향상과 분석기술의 발달로 쌓여진 임상데이터를 연구에 활용하는데 드는 비용은 그 어느 때보다 낮아지고 있다. 하지만, 임상데이터의 의미 있는 활용 면에서는 보급률에 비해 훨씬 낮은 수준에 있다.

같은 주제에 대한 여러 연구에 있어 연구대상자, 연구 설계 및 해석의 차이에 따라 서로 다른 결과를 보이는 일은 여전히 흔히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국내외 여러 기관의 데이터를 모아서 다양한 연구방법을 적용하고 분석하고자 하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지만, 기관간 시스템의 이질성, 다양한 데이터 형식, 연구윤리에 대한 다양하고 이질적인 규정, 참여기관간 신뢰 구축, 계약 및 조정, 연구 거버넌스 정책 등 다양한 장벽이 존재하며, 이를 극복하는 것은 여전히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최근 오딧세이 네트웍(Observational Health Data and Informatics, OHDSI), 피코르넷(National Patient Centered Clinical Research Network, PICORNET) 또는 센티넬 이니셔티브(Sentinel Initiatives)와 같은 분산연구망(Distributed Research Network)이 주목을 받고 있다. 분산연구망은 공통데이터모델(Common Data Model, CDM)이라는 동일한 데이터 구조를 이용하여 각 기관이 보유한 전자의무기록자료나 보험청구자료를 동일한 구조와 의미를 가지도록 변환한 후에 연구를 위해 데이터를 한군데에 모으는 대신 CDM포맷으로 변환된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참여 기관에 대해 동일한 분석 프로그램 코드를 보내주는 방식이다. 각 기관 내에서 그 분석 프로그램 코드를 실행 한 다음 분석된 요약결과만을 한군데 취합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데이터를 모으지 않고도 데이터를 모아서 분석한 것과 같은 결과를 내는 방식이다.

여러 CDM 중에서 오딧세이 네트웍이 쓰고있는 오몹(Observational Medical Outcomes Partnership, OMOP) CDM은 국제표준용어를 이용하여 변환하므로, CDM으로 변환된 데이터는 구문론적으로나 의미론적으로 동일하게 되어 국가와 용어체계를 달리하는 전세계의 어떤 기관이라 할지라도 동일한 하나의 연구 프로토콜과 분석 프로그램 코드로 분석이 가능하다.

CDM은 환자의 개인정보보호와 기밀성을 강력하게 보호할 수 있는데, CDM은 기본적으로 환자의 개인 식별정보를 포함하지 않을 뿐 아니라, 변환된 자료가 각 기관내부의 로컬 데이터 저장소에 저장되어 외부의 연구자에게 전송되거나 보이지 않고, 오로지 통계처리가 된 총괄적인 요약정보 혹은 파라미터나 계수 값만 기관을 떠나 연구자에게 회신되기 때문이다.

CDM은 특정 연구에만 적합하도록 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약품/기기 부작용연구, 비교효과연구, 경제성분석, 의료의 질평가, 임상연구 등 어떤 주제의 연구도 가능하도록 포괄적인 데이터를 포함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즉, 보유한 임상빅데이터를 CDM으로 한번만 변환하면 후향적 관찰연구 기반의 어떤 연구도 가능한 구조를 가진다.

오딧세이(http://www.ohdsi.org)는 분산연구망 중 유일한 비영리 국제컨소시엄이다. 오딧세이 네트워크 내에는 12개국 53개 데이터베이스, 6억 6천만 명분의 환자 데이터가 오몹 CDM으로 변환되어 있다. 오딧세이에서는 2016년에 4개국의 2억 5천만 명분의 환자 데이터를 사용하여 당뇨, 고혈압, 우울증과 같은 만성 질환에서의 처방 패턴에 대한 기념비적인 연구를 수행한 바 있다. 한국에서는 2개 대학병원의 4백 60만 명분의 환자 자료와 100만 명분의 보험청구자료가 CDM으로 변환 완료된 상태이며, 이외 국내 9개 대학병원이 오딧세이 컨소시엄에 참여하여 CDM변환을 진행 중에 있다. 국내에서는 2017년 말까지 1,000만 명 이상의 환자 데이터가 오몹 CDM으로 변환 완료될 것으로 예상된다.

오딧세이는 컨소시엄 참여자들이 직접 개발한 각종 프로그램을 오픈 소스로 공개하여 전세계 모든 연구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데이터의 구조와 의미가 같기 때문에 누군가 각자 개발한 소프트웨어라도 참여한 모든 기관에서 동일하게 작동한다. 오딧세이에서 개발한 대표적인 소프웨어 중 하나는 아킬레스인데, 이것은 CDM으로 변환된 데이터의 각종 특성을 웹페이지를 통해서 보여주는 소프트웨어이다. 아주대병원은 CDM으로 변환한 과거 22년간의 자료를 홈페이지에 공개하였다. (그림 1)

국내외에서 CDM 기반의 분산연구망에 참여하는 데이터 파트너가 점점 더 많아지면 의학적 증거, 지식 또는 인공 지능 알고리즘을 개발하고자 하는 학계와 산업계의 모든 사람들이 전례 없는 혜택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연구자들은 분산연구망을 통해 장차 수십억 명의 환자 정보를 이용해서 여러 분야의 의학적 증거를 빠르고 손쉽게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전세계인을 대상으로 한 이러한 협업 분석은 적은 노력과 비용으로 더 나은 의학적 증거를 쉽고 빠르게 생성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인류의 건강을 개선하는데 중요한 핵심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