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의료분쟁조정법(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조정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개정안은 ▲사망 ▲1개월 이상 의식불명 ▲장애등급 1급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 의료분쟁 조정절차를 자동개시토록 하고 있다. 의료계는 안정적인 진료가 침해받을 수 있고, 방어 진료는 물론 중환자 진료 기피현상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불안해하고 있지만, 환자단체와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은 의료계가 지나치게 우려하는 것이라며 조속히 하위법령을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의료분쟁조정법 자동개시에 대한 의료계의 우려가 큰 가운데, 현재 정부는 자동개시에 해당하는 사항들(사망, 1개월 이상 의식불명, 1급 장애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 중에 대통령령으로 정해야 하는 기준을 비롯하여 하위법령을 마련하고 있는데, 시행세칙이 마련되는 대로 연내에 시행할 예정이다. 이 제도의 핵심은 의료분쟁이 생기면 의료사고 감정단이 의료분쟁 내용을 자세히 조사하여 이를 의료분쟁조정위원회에 제출하면, 이 내용을 참고하여 조정위원회가 조정 하도록 되어 있다.
법이 시행되면 자동개시로 인해 당연히 조정 건수가 증가할 것이다. 조정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의료사고의 내용을 자세히 조사하는데, 이는 감정부에서 한다. 감정부는 100명~300명으로 구성된 의료사고 감정단에서 해당 의료사고와 관련된 의료인 2인을 선출하고, 법조인 2인 그리고 소비자 대표 1인 등 5인으로 구성된다. 의료감정은 결국 의료사고를 조사하는 의료인 2인의 의학적 전문지식과 견해가 조정에 큰 영향을 주리라 본다.
그런데 실제로 의료 감정에 관여하거나 의료 감정을 한 경험이 있는 교수들 중에서 의료 감정에 대한 교육이나 연수를 받은 사람을 찾기는 아주 어렵다. 교과과정에도 없고, 교과서나 책자를 구하기도 어렵고, 이런 걸 강의해주는 곳도 우리나라에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동개시를 감당할 만큼 좋은 의료 감정 전문가가 충분히 준비되어 있지 않다. 현재 실제로 의료감정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의과대학 교수들인데, 의료감정의 민낯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우선 진료업무와 연구에 매달리기에도 바쁜 임상교수들이 동료의사의 의료사고를 감정하는 일에 관여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소위 잘나가는 명의들은 의료감정에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실제로 의료감정을 하는 사람들은 진료나 연구 부담이 그나마 적은 ‘한가한(?)’ 교수거나 차마 거절하지 못해 떠맡은 교수가 감정을 맡는 경우가 허다하다. 임상진료만으로도 바쁜 교수들이 상식만으로 의료 감정을 해 온 실정인데, 이 상태로는 급증할 가능성이 큰 의료분쟁의 조정과 중재요청을 제대로 해결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미 법은 연내 시행을 눈앞에 두고 있다. 좋은 제도도 중요하지만, 그 제도를 제대로 운용할 사람이 없으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의료감정은 의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의사가 해야 할 업무인데, 조사를 하는 사람은 물론 조사를 받는 사람도 동료 의사들이기 때문에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 의료감정은 경우에 따라서는 동료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면서도 결과적으로는 의학이 발전하는데 공헌해야 한다. 의료의 본질적 위험이나 현실에 치중하면 공정성에 대한 불신을 받기 쉽지만, 지나치게 엄격하면 법망을 피하기 위한 방어진료가 유행할 위험이 있다. 좋은 의료감정 전문가를 급조할 수는 없으나, 학회나 연수교육을 통해 의료사고 피해를 신속하게 구제하면서 의료 환경을 훼손하지 않도록 의료감정에 대한 교육이 시급하다. 또한 이와 같은 의료사고를 전문적으로 조사하고 감정할 수 있는 사람, 고도의 전문지식과 함께 의료현실에 대한 풍부한 경험은 물론 의료분쟁이나 법학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갖춘 사람을 양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준비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