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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EWSLETTER No.166 December 2024

기획특집

◎ 의료인을 위한 필수템, 소통감수성

유 현 재서강대학교 지식융합미디어학부 교수

‘소통감수성’을 주제로 가끔 외부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수년 전 유튜브 강의 채널 ‘세상을 바꾸는 시간(세바시)’에 출연해‘인생을 바꾸는 소통감수성 전략’이란 제목으로 강의를 한 다음 벌어진 상황입니다. 개별적 인간관계에 대한 내용은 아니고, 거시적인 사회배경 속에서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을 디폴트로 하여 ‘특정한 직업군’보다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소통 역량이 필수인 시대가 되고 있음을 논하는 콘텐츠입니다. 소통감수성에 무지하거나 혹은 무시할 경우, 개인이나 집단이 얻어낼 수 있는 숱한 기회들을 한 방에 날릴 수 있음을 실제 사례들을 통해 보여드리며 감수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들도 짚어보는 내용이 되겠습니다.

그동안 참 다양한 직군에서 요청이 왔고, 개별 직군에 특화해 꼭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맥락과 원칙들을 나름 준비해서 많은 분들을 만나왔습니다. ‘공무원들을 위한 소통감수성’,‘기업인들을 위한 소통감수성’,‘언론인을 위한 소통감수성’, ‘리더를 위한 소통 감수성’, ‘의료인들을 위한 소통감수성’, ‘상담 인력을 위한 소통감수성’, ‘마케팅 담당자를 위한 소통감수성’ 등이었습니다. 참 보람된 시간들이었습니다,

이번 11월엔 영광스럽게도 대한의학회의 요청을 받았고, 학회의 주요 구성원인 의료인들의 소통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실제 사례들을 재료 삼아 강의 콘텐츠로 마련했습니다. 매우 외람되지만, 여타 직업군을 위한 강의를 준비할 때보다, 마음이 몇 배나 무거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그동안 헬스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연구와 실무를 진행하며, 의사를 비롯한 의료전문가 단체와 관련 기관들에 대한 소통과 홍보를 놓고 칼럼도 쓰고 토론도 했던 터라 어느 정도 이해는 있었지만, 이번 강의를 위해 각 병원과 의료계 전체, 개별 의사들이 최근 수년간 정부와 사회, 국민을 대상으로 수행하신 활동들을 보며 그다지 효과적이라고 판단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번 ‘의료대란’에 즈음해 의료계가 내놓은 일련의 커뮤니케이션들은 ‘소통’이라 부르기도 어려울 만큼 난감한 사례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미디어를 통한 소통과 홍보를 직업으로 연구하는 입장에서는, 다양한 맥락에서 상당히 아쉬웠다는 말씀을 드릴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여전히 일반기업이나 주체들의 그것에 비해 결코 전략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각 병원의 광고와 마케팅도 상당수 발견되었으며, 코로나 등 전염병의 유행 과정에서 의료인들이 국민을 향해 제공했던 다양한 건강정보들의 눈높이 소통도 개선의 여지가 많아 보였습니다. 의료인들의 단체나 학회의 활동상을 홍보하는 웹사이트와 유튜브에서도, 소통의 원활함이나 독창적인 모습은 찾기 어려웠습니다. 의료대란에 즈음해 일부 의료인들이 던진 일련의 발언들은, 소통감수성이 결여된 극단적인 사례들이었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상황에 따라 상대를 배려하거나 혹은 철저하게 압도해야 하는 소통 전략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직함에 ‘홍보’란 용어를 쓰셨지만, 무조건 본인이 전달하고 싶은 내용만 홍(弘, 넓게) 보(報, 알리다) 하는 초보적 수준의 소통도 다수였습니다. 영어 PR(Public Relations) 에서 보듯 ‘관계’의 개선이나 주도에 의한 목적 달성이 홍보의 궁극적 목적임을 알고 있다고 보기 어려웠습니다. 의료인들의 합리적 의견과 주장을 정확하고 쉽게 전달해야 하는 일반 국민들에게도, 어떻게든 대화를 끌어내 변화를 만들도록 전략적 긴장 관계를 구축해야 하는 정부에 대해서도, 결코 효과적이라 볼 수 없는 전략을 구사하고 계신 것으로 판단되어 안타까웠습니다.

사태의 해결을 위해 정부와의 소통은 너무나 중요하지만 이해관계와 상호불신, 시각의 차이가 워낙 첨예하니 잠시 논외로 한다면, 이 같은 상황에서 중요한 캐스팅 보트를 쥔 ‘일반인’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어떤 전략적 접근을 시도하셨는지 묻고 싶기도 합니다. 외람되지만, 의료인 주요 단체와 핵심 인사들, 소통과 홍보를 맡고 계신 분들의 활동에서 냉철한 전략을 찾기는 참으로 어려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분하고 참담한 심정에서 발언의 방식과 내용이 격앙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의료인들 입장에선, 정부의 결정과 태도가 너무나 불합리하여 분노 그 이상의 감정을 느끼신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치밀한 전략을 수립해 ‘의료 소비자’로 불리는 수천만 국민을 우리 편으로 만드는 노력은 왜 차곡차곡 안하셨는지, 소통을 업으로 하는 입장에선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씀을 조심스레 드려봅니다. 홍보나 소통은 ‘적립식’이라고 하는데, 의료대란이 본격화된 이후 그 많은 시간 속에서 과연 의료인 단체와 대표자들이 대국민 소통에 얼마나 처절하게 매달리셨는지 외람되지만 묻고 싶다는 뜻입니다.

“의사 수가 늘어난다고? 많아서 나쁠 게 있나?”, “경쟁이 심해질테니, 의료 서비스의 질은 더 높아질테지!”, “바이탈과? 정확히 뭔지는 잘 모르지만, 어쨌든 그쪽으로도 자연스레 가겠지. 의사가 많아지면...”, “기득권을 지킨다구? 안 그래도 돈 잘버는 사람들이 욕심이 끝이 없네”

의료대란의 장기화로 공포감이 체감되며 대중의 의견이 점점 변하고 있다지만, 사실 대란이 터진 초반 일반 국민들에겐 위와 같은 시각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정부는 과감하고 의사들은 고집을 부린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는 뜻입니다. 정부의 논리가 일반인의 시각에서는 훨씬 쉽고 명확해 보였습니다. 마치 진료실에서 발생하는 그 정보격차처럼, 의사 수를 둘러싼 논쟁에 대한 결정적 정보의 격차 또한, 의사들과 일반인들은 결코 동일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주장하는 일종의 낙수효과는 무책임한 긍정 회로일 뿐, 실상 현실화되지 않을 것이며, 도대체 논리를 찾기 힘든 2,000이란 숫자가 만드는 혼란이 향후 어느 정도일지, 국민의 눈높이에서 직접 시뮬레이션하는 웰메이드 영상을 만드실 순 없었는지요? 격앙된 감정을 잠시 가라앉히시고, 의료단체들이 한 자리에 모여 국민들을 초대해, 모든 질문에 답하는‘타운홀 미팅’을 주요지역에서 개최해 여론을 반전시키려는 시도는 왜 안 하셨는지요?

물론 일부 의사들이 최근 정보 유통의 핵심인 숏폼 등을 제작해 필사적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콘텐츠의 양과 질에서 아쉬워 보인 것은 저만이 아닐 것입니다. 텍스트를 정리해 입력하면 자동으로 영상까지 만들어주는 AI까지 등장한 시대인데, 왜 의사들의 주장을 국민들이 쉽고 빠르게 이해 및 공감할 수 있도록 풀어주시는 노력을 안하셨나 답답한 심정이라는 말입니다. 그 와중에 의료인 내부의 갈등과 툭툭 터져나오는 대표자의 막말은 일반 의료 소비자들을 더욱 숨막히게 할 뿐이었습니다. 국민들이 응원을 하고 싶어도, 도대체 계기가 마련되지 않는 답답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의료인을 위한 소통감수성 개선을 위한 방법을 감히 제언해 봅니다. 첫째, 의료인 교육에서 소통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제가 정확히 알수야 없지만, 지금보다는 과목 수도 늘리고 다양성도 확보하셔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각급 병원이나 병원협회, 보건대학원 등에서 특강을 하며 의과대학에서의 소통교육에 대해 질문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중요 과목으로 설정해 제공하고 있다는 사례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의료인과 대중 소통, 의료인과 의료인의 소통, 수술실 내 소통, 의료인과 공적 기관의 소통, 의료인과 미디어 활용 등 유학시절 헬스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며 발견한 관련 과목들만 해도 너무나 많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현실적인 문제들은 적지 않겠습니다만, 고민해 보시길 감히 제언드려 봅니다.

둘째, 의료인 단체들이 온전히 통일성을 갖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면, 부디 대외 소통 전략 등은 제발 통합해 관리할 수 있도록 T/F 형식의 시스템이라도 갖추시기를 제언드립니다. 다수의 일반기업들은, 규모와 구성원의 숫자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대체로 CCO 즉 Chief Communication Officer를 설치합니다. 소통과 커뮤니케이션이 해당 조직과 구성원의 미래에 필수적 요건이 됨을 인지하기 때문입니다. 대 국민, 대 소비자, 대 사회, 대 정부 관계에 있어 어떠한 미디어 옵션으로 소통과 홍보를 수행할지 집중적으로 고민하고 집행하는 권한을 갖는 간부이자 조직이 되겠습니다. 내부 승진일 수도 있겠고, 외부 전문가의 영입도 굉장히 많습니다. 의료인 출신일 수도 있지만, 의료계와 의료인을 이해하는 외부 인사여도 무방할 것입니다. 위기와 휘말리는 이슈가 없는 조직은 없고, 활동이 왕성한 조직일수록 풀어야 하는 소통 문제는 방대합니다. 복잡한 상황을 정확히 분석하고, 최선의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세워 정부와 국민, 대중 그리고 사회를 향해 그때그때 효과적으로 소통하는 사람들을 서방에선 Spin Doctor라 부릅니다. 현재 의료인 그룹에서, 너무나 필요한 인사요 조직이란 생각입니다. 정보의 단순한 제공과 방향성에 대한 주장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전략적 소통은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업무와 역할이 아닙니다. 경제 관념이 극도로 투철한 일반기업들이 굳이 막대한 투자를 하며 CCO를 운영하는 이유를 꼭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부가 없는 국가도 상상하기 어렵지만, 의료인이 없는 사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의료대란을 해결하는 방법과 조치는 다양하겠지만, 그 가운데 전략적 소통은 매우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소통과 소통 감수성은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익숙해지는, 어쩌다 찾아오는 선물이 아니라 반드시 필사적으로 훈련해야만 낚아챌 수 있는 결과물임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제가 쓰고 있는 책에서 사용한 소통 감수성의 정의를 소개드려 봅니다.

“…소통감수성이란, 정보나 개념의 전달 대상을 필사적으로 배려하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정보원(Sender)은 전달 대상의 마음과 상황을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가장 적절한 수준과 내용을 자유자재로 적용할 수 있어야만 한다. 정보원은 전달의 상대가 명쾌하고, 건전하고, 기분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전략적 사고(Strategic Thinking)와 진정성 있는 실행력(GenuineExecution)을 갖추어야 한다. 이 같은 일련의 노력을 수행하려는 자세와 역량의 정도를 ‘소통 감수성’이라 정의한다.”

감사합니다.
대한의학회와 의료인 모두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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